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투자를 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R&D 투자 비중은 세계 1위다. 그러나 공공 R&D 성과는 저조하다. 연구비 대비 기술료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특허생산성인 출원 수는 높으나 논문 피인용도가 낮아 질적 수준이 낮다. 사업화와 성과 확산 수준도 저조한 상황이다. 지난 10여년간 생산성은 개선되지 못했다. 이는 한국 R&D의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기초연구의 질적 성장을 위한 시스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 기획형`과 `자유 공모` 비중 적절히 배분해야
기초과학은 과학기술 혁신의 바탕이며 산업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한 유형이다. OECD 기준으로 R&D는 목적 관점에서 기초과학, 원천기술, 산업기술로 구분된다. 연구개발 단계 관점에서 볼 때 기초연구, 응용연구, 실험·개발연구로 나뉜다.
기초연구 투자 규모는 최근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기초연구비 투자목표를 `비중 확대`에 두고 진행해왔다. 2017년 정부 R&D 투자 40% 달성이 목표다. 기초연구투자 규모는 2010년 2조9563억원에서 2016년 5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투자 비중은 정부 R&D 39%다.
그러나 정부 기획의 주문형 연구사업인 하향식(top-down) 사업 규모가 크다. 연구자들이 자기 연구를 할 수 있는 자유공모 연구지원은 1조1000억원뿐이다. 이 때문에 풀뿌리 연구인 연구자 중심의 상향식(bottom-up) 연구사업을 적절하게 배분해 연구사업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교육부 등 일부 부처의 대학지원 기능 연구사업뿐만 아니라 응용과 개발 분야에 지원되는 정부 대부분 부처 사업에도 연구자 중심의 자유공모형 상향식 방식을 도입해 대학의 연구개발 역량을 육성해야 한다.
기초 연구에서는 정부가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KISTEP 관계자는 “산업부 R&D는 산업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으로 가고, 산업부의 중장기 원천연구 부문을 과학기술 쪽으로 몰아서 정부 R&D를 `기초 원천기술 육성`에 맞춰 10~20년 내다보고 된장 묵히듯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단기 성과로 논문보다는 내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야 5~20년 뒤에 원천기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과학계 관계자는 “IBS 사업단을 25개 지원하는데 한 연구단에 100억원씩 한다”면서 “이렇게 운영할 게 아니라 충분히 자생 능력이 있고 역량 있는 곳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렇게 획일적으로 정부 주도로 운영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연구자에게 직접 수혜 가는 사업에 연구비 늘려야
기초연구 지원에 포함되는 항목은 순수 R&D사업비, 연구기관 지원사업, 연구거점이나 연구기반 조성 등 복합활동사업과 국립대학교원인건비(이공계), 인력양성사업, 정책관리사업 등이다. 이 같은 정부의 기초연구비 비중 산정방식은 기초연구비 규모를 과대 산정할 소지가 있다. 기초연구 역량을 강화하려면 차라리 연구자에게 직접 수혜가 있는 사업에 좀더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유공모 연구지원이 1조1000억원이기 때문에 연구 현장에서는 기초연구비 지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연구원 인건비가 턱없이 부족하고 젊은 신진 교수는 연구실(랩) 조성비 부족하다는 것이다. 작년 10월에는 기초과학 연구비를 2조원으로 늘려달라며 1500여명 과학자들이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기초연구지원 R&D사업 평가` 보고서에서 “현행 기초연구 투자목표를 수정해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목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가 제시한 `연구자 중심형 기초연구사업`의 투자 확대 목표(2018년까지 1조5000억원)는 실질적으로 통제 가능하고 연구자에게 직접적 수혜를 줄 수 있는 사업으로 바람직한 정책 대안”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국립과학재단(NSF) 등 기초연구지원기관의 예산을 2배 증액하는 구체적인 실행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우리가 언제 긴 시간 정말 조건없이 지원해봤냐”면서 “연구로서 작은 금액인 2000만~3000만원 정도는 아무런 행정업무를 하지 않게 하고 5~10년씩 지원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이 강해져야 노벨상도 나와
노벨상과 기초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하나 같이 `기초과학`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20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벤키 라마크리슈난 영국왕립학회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국가 경제를 성장시킬 동력은 과학 밖에 없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과학에 투자해야 더 경제가 발전한다”면서 “기초 과학이 당장 응용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향후에는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기초연구는 연구 생태계 조성을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연구시설과 장비 구축을 지원해도 인프라 기술과 인력 지원이 미비해 활용할 수가 없다. 실험실을 운영할 테크니션은 비정규직 등으로 신분이 불안정하고 인력이 부족해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다. 기술 축적이 안 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에서 연 `노벨상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선영 서울대 교수는 “노벨상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파괴력 가진 창의적 과학을 지원해야 한다”며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면 개인보다 공용 인프라에 우선 투자할 필요가 있는데, 동물실험실을 갖췄는데 하드웨어가 있어도 운영비가 없어서 실험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연구비 환경은 논문 갖고 평가하기 때문에 시니어 과학자에게 너무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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