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와 기업의 연구개발(R&D) 전략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메가트렌드인 △스마트화 △서비스화 △친환경화 △플랫폼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반 시설이나 장비 구축에 집중하는 기존의 R&D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 개념 설계와 소프트웨어(SW) 개발 등 두뇌 집약형 분야로 R&D 우선순위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것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소프트파워를 제고할 수 있는 R&D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현실과 선진국과의 경쟁 구도, 우수 R&D 사례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R&D 방향을 모색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스마트화의 핵심 기술인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우리나라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약 2년 뒤처진다. 미국 기술 수준을 100으로 가정할 때 70~80에 불과하다. 스마트공장 확산 노력에도 센서와 SW 등 핵심 부품과 장비는 외산에 의존하고, 규제와 수익 모델 부재 등으로 데이터 활용 사업화 역시 취약하다.
서비스화에서도 기업 인식 부족으로 R&D 투자가 저조하다. 규제 장벽도 높아서 제조업 서비스화 수준이 낮다. 실제로 우리나라 민간 영역의 서비스 R&D 투자 비중은 8.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9.5%)에 비해 30%포인트(P) 이상 낮다. 일부 대기업과 기업·소비자간거래(B2C) 기업 중심으로 기획, 설계, 디자인 영역에서 고급 서비스 도입이 시도되고 있지만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속도가 더디다는 분석이다.
친환경화는 온실가스 저감 등 핵심 기술 수준이 취약하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첨단 신소재 기술에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플랫폼화는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협소한 국내 시장에 매몰돼 가장 취약한 분야로 꼽힌다.
이런 와중에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산업과 R&D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미국은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플랫폼을 선점하고, 제조·문화 콘텐츠 등 타 산업과의 융합으로 창의성 부가 가치를 창출한다. IoT, 차세대 통신 표준 선점을 위한 글로벌 컨소시엄도 주도한다. 정부는 제도 선제 마련과 대규모 실증 사업에 R&D 지원을 집중한다.
독일은 강점이 있는 제조업에 ICT 혁신을 적극 수용, 서비스로 확산하는 작업에 나섰다. 지멘스 등 자국의 글로벌 기업 제조 혁신을 정부 차원의 산업·R&D 전략으로 뒷받침한다.
일본은 로봇과 AI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국가 혁신 프로젝트를 전개한다. 데이터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인력과 기술 개발 등 7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수준의 IT 제품과 인터넷·모바일 보급률, 제조 로봇 적용 수준과 다양한 제조업 포트폴리오는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저작권과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 보호도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 등 소재부품부터 자동차·전자·기계 등 수요 산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한 주력 산업이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발한 착상과 아이디어가 언제라도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자유롭고 개방된 혁신 생태계가 중요하다”면서 “성과 중심의 R&D 집중 지원, 융합 플랫폼 구축 등 정책 추진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 R&D 정책을 소프트파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R&D 성격이 개념 설계와 SW 개발 등 두뇌 집약형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의 R&D 지출 가운데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27.8%)은 미국의 64%, 일본의 44% 수준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으니 창의 아이디어는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중소·중견기업 및 벤처기업 연구소 신규 인력 고용과 연계한 R&D 지원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정부 R&D를 기초·모험 연구 중심으로 재편하고 개발·사업화는 민간으로 단계를 밟아 전환해야 한다. 민간과 정부의 R&D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성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6일 “정부의 지정 연구는 모험이나 도전형 과제를 원칙으로 하고, 연구자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자유 공모 과제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민·관 매칭 R&D 사업을 확대하고, 세제 지원 전환 등으로 지원 체계를 효율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지재권 체계를 구축, 민간의 혁신 투자를 장려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올해를 기점으로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시동을 걸었다. 스마트카, 로봇, 차세대 반도체 등 유망 신산업의 R&D 예산을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린 2117억원으로 확대했다. R&D 지원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도 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체계를 바꾸고, 우수한 성과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양종석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