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팹리스 반도체 산업이 침몰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 업체 10곳 가운데 7곳의 영업이익이 1년 새 30% 급락했다. 적자 전환과 창업주가 떠나면서 바이오 등 신산업으로 아예 업종을 전환하는 회사도 속출했다. 팹리스 반도체는 초기 진입 장벽이 높아 최근 몇 년 동안 창업이 없던 분야로 꼽힌다.
6일 전자신문이 코스닥 상장 팹리스 반도체 분야 주요 15개 업체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70%가 넘는 11개 업체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이상 줄거나 적자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의미 있는 실적 향상을 나타낸 업체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 전문 어보브반도체(50% 증가), 차량 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AVN)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공급 업체인 텔레칩스(45% 증가) 정도였다. 적자 행진을 이어 온 MCU 전문 에이디칩스와 전력선통신(PLC) 반도체 업체 아이앤씨는 지난 한 해 흑자를 달성하면서 상장 폐지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팹리스 기업이 어려워진 이유는 주력 모델 변화, 단가 인하 압박 등 급변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제품 개발 등 차세대 투자가 늦어지면서 `타임투마켓 공략`에 실기했다.
픽셀플러스는 HD급 이상 고해상도 폐쇄회로(CC)TV 카메라용 아날로그 이미지센서 시장의 대응이 늦어 적자로 전환됐다. 넥스트칩은 첨단자동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시장 진입을 위한 연구개발(R&D)비 증가와 연결 자회사 적자로 인한 이익 감소로 적자 전환됐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의 국내 디자인하우스 파트너사인 에이디테크놀로지 역시 고객사 양산 주문 감소로 적자 전환했다.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용 자동초점(AF) 드라이버IC가 주력인 동운아나텍은 경쟁 심화에 따른 판가 하락과 광학식손떨림방지(OIS)용 신제품 적용 지연으로 전년 대비 82%나 이익이 축소됐다.
디스플레이 구동 드라이버IC를 주력 매출원으로 삼고 있는 팹리스는 전방 산업계의 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 패널 시장 불황기에 깎인 칩 공급 단가를 회복시키지 못한 것도 이유의 하나였다. 실리콘웍스는 전년 대비 16%(추정), 아나패스는 30.9% 이익이 줄었다. 티엘아이는 적자 전환했다. 자동차용 반도체 전문 업체인 아이에이는 지난해 하이브론을 자회사로 편입시키면서 매출은 늘었지만 주요 고객사 최장기 파업 영향으로 이익이 64%나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 수요처와 시장을 뚫지 못한 팹리스 기업 대부분이 실적 악화로 시름을 앓고 있다”면서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메모리에만 국한된 것으로, 한국 반도체 전체 산업은 오히려 최악의 불황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실적 악화로 최대 주주가 바뀐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가 아닌 의료나 바이오 분야로 사업 영역을 바꾸고 있다. 사실상 팹리스 반도체 시장에서 철수했다. 코아로직도 회사 주인이 바뀌면서 블랙박스 등 세트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오디오IC 칩이 주력이던 네오피델리티는 바이오와 의료기기 분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 알파홀딩스(옛 알파칩스)는 지난해 최대 주주 변경 이후 디자인하우스 사업을 지속하면서 바이오 분야 신규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 참여 업체가 줄어들면 결국 산업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면서 “센서와 지능형 시스템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기반 부품으로, 자칫 이들을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국내 시스템반도체 설계 전문가의 수준이 해외보다 낮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서 “이들이 좀 더 원활하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등 산업계 전반의 숨통을 틔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