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을 붙잡으려 기록하기 시작했다. 메모하는 습관이 없어도 중요한 약속이나 계획은 적어놓기 마련이다.
이재철 세기정보통신 대표는 메모에 인생을 담는다. 고등학생이던 1967년부터 지금까지 50년동안 하루도 거른 날이 없다. 메모의 장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무실 한 쪽 책장에는 색이 바랜 메모장과 노트가 가득하다. 크기나 모양도 제각각이다. 언뜻봐도 50권이 훌쩍 넘는다. 첫 장에 1969년이라고 쓰인 메모장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받은 월급을 적었다.
이 대표는 “당시 선생님이 메모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면서 “머리가 좋지않아 메모할 수밖에 없다”고 겸손해했다.
수많은 메모에는 이 대표 만의 노하우가 숨어있다.
이 대표는 모든 내용을 한 곳에 담지 않는다. 일정과 업무, 골프, 여행 등으로 나눴다. 용도에 맞게 메모장을 들고 나가면 된다. 글은 빈 칸에 맞춰 간결하고 짧게 쓴다. 많은 내용을 담으려 글씨 크기를 줄이고 흘려 쓰지 않는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면 이 대표 홀로 사무실에 남는다.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오늘 만난 사람과 시간, 장소는 물론 나눈 대화내용, 기억에 남는 사건 등을 빼곡히 기록한다. 심지어는 메모장이나 다이어리를 얻게 된 경위까지 적는다.
그는 “메모는 실수를 줄여준다”면서 “약속을 철저히 지킬 수 있고 시시비비를 가릴 때도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만날 때마다 적어놓은 내용은 얘깃거리가 됐다.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시간도 부드럽게 만든다. 덕분에 메모는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제품 설명 없이 대화만 하다 수주한 경우도 여러번이다. 업무용 노트를 뒤적이다 보면 알 수 있다. 올해 세기정보통신을 설립한지 38년째니 꼭 37권이다. 지금은 38번째를 써내려가고 있다.
메모하는 습관을 보면 그의 성정이 잘 드러난다. 성실하고 꼼꼼하다. 억지가 없고 명확한 자료에 근거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한다. 덕분에 각종 협회나 위원회에서 감사직을 맡긴다.
한국SW산업협회에서는 올해로 일곱번 연속 감사에 선임됐다. 내년 임기까지 더해 14년이다. 세기정보통신이 들어선 한신IT타워 운영위원회, 한국정보산업협동조합에서도 10년 가까이 감사를 지내고 있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직원평가서를 보면 직원·팀별 회사 기여도, 원가가 1만원 단위로 기록돼있다. 이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 기여도와 비용을 적절하게 배분해 직원 불만을 최소화했다.
이 대표는 “세기정보통신은 크진 않지만 단단한 기업으로 성장해왔다”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창선 성장기업부(구로/성수/인천)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