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총수일가 법정서 한자리에…혐의 모두 부인

20일 오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하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20일 오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하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롯데그룹 총수 일가 5명이 한꺼번에 법정에 섰다. 이처럼 대기업 총수 일가가 같은 날 법정에 서는 일은 드물다. 배임·횡령 등 경영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롯데그룹 총수 일가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법정에서 “롯데는 100% 내 회사인데, 누가 나를 기소했느냐”고 언성을 높이며 퇴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20일 오후 2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으로 기소된 신 총괄회장을 비롯한 5명의 정식 재판을 열었다. 롯데그룹 총수 일가가 그룹 경영 비리로 재판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일 오후 법정에 출석하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셋째부인 서미경씨.
20일 오후 법정에 출석하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셋째부인 서미경씨.

신 총괄회장을 비롯해 두 아들인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 구속 수감 중인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법정에 섰다. 서씨는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로 선발돼 연예계 활동을 하다 돌연 은퇴한 뒤 30여년 만에 언론에 노출돼 관심을 끌었다. 서씨는 “그동안 왜 검찰 조사에 불응했느냐”는 등 취재진 물음에 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다.

신동빈 회장은 출석 전 기자들의 질문에 “심려 끼쳐 죄송하다.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짧게 답한 뒤 법정으로 들어섰다. 신 전 부회장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채 입장했다.

20일 법원에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20일 법원에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 총괄회장은 재판이 시작된 지 약 20여분이 지난 후에 휠체어를 타고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신 총괄회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신 회장 등에게 “이게 무슨 자리이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질문하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장은 신 총괄회장 측이 공소사실에 대한 부인 입장을 모두 밝히자 퇴정을 허락했다. 신 총괄회장은 직원들이 휠체어를 밀며 이동하려 하자 격렬하게 거부 몸짓을 보내며 “책임자가 누구냐. 나를 이렇게 법정에 세운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20일 법원에 출석하고 있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
20일 법원에 출석하고 있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

이날 재판에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일제히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에게,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에게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씨와 신 이사장 측도 “신 총괄회장의 의사 결정”이라고 책임을 떠 넘겼다.

신 회장은 2009년 9월부터 2015년 7월 계열사 끼워넣기 등 방법으로 회사에 47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신 총괄회장과 공모해 신 이사장과 서씨, 서씨의 딸 신유미씨가 운영하는 회사에 사업권을 몰아줘 774억원의 손해를 가하고 신 전 부회장에게 391억원, 서씨 모녀에게 117억원 등 총 508억원의 급여를 부당하게 지급한 혐의도 있다.

신 총괄회장은 2006년 차명으로 보유하던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 3%를 롯데가 장녀인 신 이사장에게, 3.21%를 서씨 모녀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 증여세 858억원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 임원으로서 특별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도 391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신 이사장과 서씨의 혐의는 조세포탈 및 롯데시네마 매점 불법 임대 공모 등이다.

한편 총수 일가 외에 함께 기소된 채정병 전 롯데카드 대표와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황각규 경영혁신실장, 소진세 사회공헌위원장 등도 공판에 출석했다. 이들 역시 총수 일가와 마찬가지로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