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조작 없이 주행하고 주차까지 해내는 자동차가 등장한 데 이어 2~3년 후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상용화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스스로 운전하는 스마트카, 바둑 최고수가 된 인공지능(AI) 알파고, 사람과 사물이 소통하는 사물인터넷(IoT) 등 상상 속의 미래 기술을 현실로 옮겨 온 주인공은 반도체다.
최근 자동차에 사용되는 전자 장비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자율주행자동차로 진화됨에 따라 대당 전장화 원가 비율은 2005년 기준 19%에서 2020년에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자율 주행 기술의 진화뿐만 아니라 AI와 연계된 적용 산업이 크게 확대, 반도체 시장은 사상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연산, 논리 등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인 '비메모리 반도체'로 구분된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처럼 데이터의 해석 및 계산까지 수행하는 반도체로, '기기의 뇌' 라고도 불린다.
과거에는 PC,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등에 적용되는 반도체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PC 사양을 능가하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여러 최첨단 디바이스에 고성능 반도체가 적용되고 있다. IoT·AI·클라우드 등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의 활성화에 따른 데이터 트래픽 급증, 고성능·고용량 서버와 스토리지 필요성의 증대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이러한 반도체 시장 호황기를 빗대 '슈퍼 사이클'이 아닌 '울트라 슈퍼 호황'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태동했고, 반도체 굴기 30여년 만에 세계 1위를 눈앞에 둘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 호황의 이면에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국내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정확한 고찰과 균형 발전이다. 실제로 국내 반도체 산업이 전 세계 1등을 차지하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한정된다. 마치 반도체 산업 전체에서 최고인 것으로 착각하는 이른바 '메모리 1등 착시 효과'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대략 연간 40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국내 업체의 주력 시장인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미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확고한 기술력으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내 독과점 체제에 성공했지만 이 시장에서 국내 업체 점유율이 60%를 넘는 반면에 시스템 반도체인 비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5%에 그친다. 세계 반도체 시장 전체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4배 가까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1등'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반도체 산업은 세계 1등이라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이라는 지상 과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
미래 산업을 견인하는 특화된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산업 생태계 장기 발전을 위해서도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의 한계인 메모리 반도체 편중을 극복하고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도모해야 한다. 그나마 최근 들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고민과 시스템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민간 기업의 투자 움직임은 용기를 북돋는다.
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의 호황은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게 틀림없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상황 속에서 국내 기업이 주도권을 잡고 패권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학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김준석 에이디테크놀로지 대표 dhyou@adte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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