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연구개발(R&D) 라인을 구축했다. 패널 공정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스(AP)를 자체 개발하듯 프리미엄 OLED를 자력으로 개발, 제조사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애플은 대만 연구소에 2.5세대급 플렉시블 OLED R&D 라인을 갖췄다. 공정 기술을 연구하기 위한 용도다. 그동안 애플은 대만에서 기판이 딱딱한 리지드 OLED 공정을 연구했지만 최근 플렉시블 OLED로 전환했다.
애플은 대만 R&D 라인에 국내 선익시스템의 증착기를 도입했다. 선익시스템은 오랫동안 조명용과 R&D용 증착기를 국내외 기업에 납품한 경험이 있다. 최근 양산용 6세대 플렉시블 OLED 증착기를 LG디스플레이에 공급, 일본 캐논도키의 독점 구조를 깨뜨렸다.
공정 기술은 증착, 식각, 코팅, 세정 등 각 생산 단계에서 요구되는 핵심이다. 수율과 품질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생산 라인을 보유한 패널 제조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모두 아무리 회로를 잘 설계하고 고품질 재료와 장비를 사용해도 공정 기술이 없으면 원활히 생산할 수 없다. 세계 유수의 디스플레이·반도체 기업이 사용하는 장비와 재료를 똑같이 사용해도 결과가 천양지차를 보이는 이유다.
애플이 직접 공정 기술 확보에 나선 것은 패널 제조사의 의존도를 낮추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자사에 특화된 공정 기술을 적용하면 같은 패널 제조사에서 생산한 제품이라 해도 결과물이 달라진다. 차세대 기술을 선점하면 가장 앞선 디스플레이를 독점 확보, 자사 제품에 사용할 수 있다.
애플은 그동안 대만에서 리지드 OLED 공정 기술을 연구했다. 플렉시블 OLED가 시장의 대세로 자리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폴더블, 롤러블, 투명 디스플레이 등 응용 분야가 광범위해 성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점하면 완제품 경쟁력과 차별성을 높일 수 있어 직접 공정 기술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직접 패널을 생산하지 않지만 패널 제조사에 준하는 수준의 기술과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 공정과 후 공정 전반에 걸쳐 세계 수준의 장비, 재료, 부품 기업과 직접 만나 기술과 제품을 파악한다. 자사 제품 생산 라인에 어떤 기술과 장비를 사용할지 직접 결정, 패널 제조사에 요구할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OLED 아이폰 생산을 위해 삼성디스플레이 제품을 공급받고 있지만 지문·안면 인식 기능 정도를 제외하면 갤럭시S8 시리즈에 탑재된 패널과는 당장 큰 차별점이 없어 보이는 게 문제”라면서 “특화된 공정 기술을 갖추면 특정 패널 제조사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전략 차원에서 후발 공급사에 기술을 공유해 단기간에 생산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증강현실(VR)·가상현실(AR) 등 다양한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이 뒷받침돼야 새로운 디바이스 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할 수 있다”면서 “기존 제품 차별화는 물론 차세대 디바이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체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더 높이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