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혁신본부, 예산권 없이 '미완의 출항'…先출범 後보완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 기대를 모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이달 '반쪽' 출범한다. 예산권 없이 본부장 직급만 높인 모양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지출 한도 공동 설정,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수행 권한 같은 '알맹이' 확보는 숙제로 미뤘다.

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기혁신본부를 현 직제대로 우선 출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과기혁신본부 직제는 지난달 26일 개정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령과 시행 규칙에 담겼다. 정부가 애초 구상한 혁신본부 권한과 역할에 턱없이 부족하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혁신본부를 출범시킨 후 운영 과정에서 보완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직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직도

시행령은 혁신본부 기능을 과학기술 정책 총괄, 국가 R&D 사업 예산 심의·조정, R&D 사업 성과 평가로 정의했다. 시행 규칙도 연구예산총괄과장에 R&D 예산 심의 조정과 협의를 담았을 뿐이다. 애초 제시된 국가 R&D 총지출한도(실링) 공동 설정, 예타성 조사 수행은 담기지 않았다.

혁신본부가 '반쪽' 출범하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애초 혁신본부의 역할과 권한을 대폭 강화,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독립된 예산권을 부여해 R&D 특수성을 반영하고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속도를 내는 구상이다.

예산권 확보가 핵심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혁신본부 산하에 성과평가국이 신설되고 차관급 본부장 보직이 생긴 것이 전부다. 두 가지 변화를 제외하면 옛 미래창조과학부의 과학기술전략본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평가다.

표면상 이유는 법령 미비다. 지난달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과 추경안을 통과시킬 때 다른 법안 처리가 미뤄졌다. 정부조직법과 함께 발의된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두 법안 모두 예산권 등 혁신본부 권한 강화가 골자다. 이들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서 시행령과 시행 규칙에도 관련 내용을 담을 수 없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 현 직제에는 예산권 관련 내용을 담을 수 없었다”면서 “예산권 확보는 혁신본부 출범, 본부장 인선 후 법령 통과 상황을 보며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기혁신본부, 예산권 없이 '미완의 출항'…先출범 後보완

혁신본부 예산권 강화 보류는 기획재정부의 반대 목소리 탓이 컸다. 기재부는 국가재정법 개정안 발의 직후부터 반대에 나섰다. 기재부 예산권을 과기정통부에 넘기면 R&D 예산이 비대해지는 등 재정 악화가 우려된다는 논리였다. R&D 수행 부처인 과기정통부가 예타를 수행하는 것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혁신본부 조직 규모가 기대 이하라는 지적도 나왔다. 혁신본부는 3국 13과로 출범한다. 실장급 직위가 없다. 연구개발정책실장 보직이 있는 1차관보다 많은 권한과 함께 부처 간 조정이 필요한 데도 현실은 반대다. 3국 체제로는 타 부처와 정책 협상·조정력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대 혁신본부장 인선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부장은 신설 조직 정비는 물론 '예산권 확보'라는 숙제를 떠안는다. 청와대나 정치권이 지원하지 않으면 과기 컨트롤타워의 독립은 요원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과학계 관계자는 “결국 기재부가 혁신본부 출범도 하기 전에 발목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다음 국회 회기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면서 “이쯤 되면 청와대나 정치권이 결단해 매듭을 풀고, 정책 구상을 실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