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혁신본부가 예산권 확보 지연에 이은 본부장 인사 실패에 또 한 번 발목이 잡혔다. 정부 출범 100일이 다 되도록 자리를 못 잡은 채 잡음만 무성하다.
혁신본부는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 출범이 지연된데 이어 인선까지 난항을 겪었다. 예산권 확보도 부처 갈등에 부딪혀 미뤄졌다. '과학기술 르네상스' 동력을 상실할 우려가 크다.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장은 7일 임명 직후부터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임명 후 사퇴까지 나흘 동안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임명 다음 날인 8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9개 시민단체, 국민의당, 정의당 등 각계에서 반대 성명·논평이 나왔다. 9일에는 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 바른정당, 자유한국당 등으로 반대 기류가 확산됐다.
박 전 본부장은 10일 간담회를 자처하고 논란에 해명, 정면 돌파를 시도했으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학가 반대 서명운동까지 확산되자 11일 자진 사퇴했다.
정치권과 연구 현장,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전방위 압박이 있었다. '황우석 사태'로 대표되는 정책 과오와 연구 윤리 관련 문제 지적을 견디기 어려웠다.
초대 본부장 인사 실패로 과기혁신본부 공식 출범이 또 미뤄졌다. 새 정부 과학기술 거버넌스 컨트롤타워라는 점에서 공백 장기화는 문제다. 혁신본부는 범 부처 국가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조율한다. 기초연구 확대·일원화, 예비타당성조사 개선, 연구원 처우 개선 등은 혁신본부 역할이 필수다.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심의·조정한다. 예산 지출한도(실링) 공동설정권, 예타조사권도 갖는다. 독립된 예산권이 없어 미완성에 그쳤던 참여정부 혁신본부를 보완하는 구상이다.
이를 실현할 사람도, 제도도 부족하다. 혁신본부 예산권을 담은 국가재정법,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 표류 중이다. 기획재정부 반대가 거셌다. 갈등을 책임지고 해결할 본부장은 여전히 공석이다.
과학기술 르네상스라는 거창한 목표에 비하면 후속 조치가 미흡했다.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했지만 인력 규모가 턱 없이 적었다.
과학계 관계자는 “청와대가 박 전 본부장 논란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임명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과학계와 소통이 소홀하거나 자문할 사람이 부족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