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공급부족에 따른 칩 가격 상승 영향으로 연일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경신하고 있지만 기술 경쟁력 강화에 소홀했던 후방 패키지, 테스트 산업계는 심각한 경영 위기로 시름하고 있다.
팹리스 반도체 업체 티엘아이의 자회사 윈팩은 2015년부터 2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도 34억원 적자다. 이 회사는 2013년부터 4년 연속 순손실을 냈다. 재무 상태는 악화됐다. 회계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은 이 회사의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366억원이나 많다는 점을 들어 “계속기업으로 존속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최근에는 2020년 8월 만기인 130억원 규모 전환사채(CB) 일부에 대한 조기상환 청구까지 들어왔다. 이달 18일까지 이자를 포함, 90억여원을 상환해야 한다. 통상 CB는 만기까지 보유해 이자수익을 거두거나 만기 전 주식으로 전환해 주가 상승 차익을 실현한다. 그러나 발행 기업의 주가가 전환가를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조기상환 청구가 들어왔다. 윈팩은 긴급 자금 마련을 위해 14일 특수관계인이자 모회사 티엘아이의 최대주주인 김달수 사장 개인과 관계사 센소니아를 상대로 45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해 자금을 수혈키로 했으나 남은 45억원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미 모회사 티엘아이는 윈팩의 기계장치 매입, 42억원 자금 대여 등을 진행한 상황이다. 티엘아이 역시 최근 실적이 크게 감소한 상태여서 추가 지원은 어렵다. 티엘아이는 부실 자회사인 윈팩의 지분 매각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마땅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에이티세미콘 상황은 더 나쁘다. 패키지 테스트 물량이 줄어 실적은 내리막이고 재무상황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된 상태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482억원이나 많다. 에이티세미콘은 이미 자본잠식에 들어가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이번 분기에는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관리종목 사유가 추가됐다. 에이티세미콘은 지난 3월 6일 제3자 배정(에버라인메디컬그룹) 유상증자로 20억원의 자금을 모은 뒤 바로 다음 날인 7일 에이티현대플러스가 발행한 CB 20억원을 인수했다. 그러나 발행자 계약위반으로 계약이 취소됐다. 인수대금을 반환받기로 했으나 지난 반기말까지 이를 회수하지 못했다. 에이티현대플러스는 올 3월 2일 설립된 신설법인이다. CB 인수 당시 이 회사 대표이사는 유상증자에 참여한 에버라인메디컬그룹의 대주주이자 3월 31일 사내이사로 선임이 예정된 정윤호 이사였다. 에이티세미콘의 모회사 에이티테크놀로지(옛 프롬써어티) 역시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2015년 경영진 횡령 사고 등으로 홍역을 앓았다. 관계기업 전반의 신뢰가 떨어진 상태다.
하이셈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2015년과 2016년 각각 42억원과 3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07년 설립된 하이셈은 과거 하이닉스 사장직을 역임한 우의제씨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주성엔지니어링, 케이씨텍, 동진쎄미켐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었으나 올해 초 팬아시아세미컨덕터로 지분을 넘겼다. 현재 팬아시아세미컨덕터의 최대 주주는 대만계 사모펀드다. 업계에선 하이셈 주요 주주가 적절한 시기에 지분을 털고 나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들 세 회사는 메모리 분야의 반도체 패키징, 테스트가 주력이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모두 신기술 개발에 소홀하면서 점점 거래가 줄었다. 고객 다변화에도 실패했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후공정 업체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떨어지는 기술 경쟁력, 일부 불투명한 회계 처리 과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