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충전기 중국산이 '판친다'

국내 전기자동차 충전기의 핵심 부품을 중국산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장 규제를 앞세워 한국 전기차 배터리의 자국 진출을 가로막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중국 제품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는 정부가 국가 과제를 통해 개발을 지원했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도 분류된 보호 산업이다. 그러나 값 싼 중국산이 국내 시장에 무차별 확산되고 있다.

발주 주체는 안전과 품질을 우려하면서도 검증할 마땅한 기준이 없어 시장을 열어 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전기차 충전기 중국산이 '판친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기 최대 발주처인 환경부 환경공단과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여섯 차례 실시한 공용 급속충전기(50㎾h급) 입찰 물량(1060기) 가운데 중국산 충전전원장치를 탑재한 제품이 72%(760기)를 따냈다.

입찰 주체는 우리 중소기업이지만 충전기 핵심 장치인 모듈 형태의 충전전원장치는 중국산이다.

완제품 가격에서 충전전원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수준이지만 이 장치 이외의 모든 부품은 보통 기성품으로 충당된다.

충전기 수출 시 관세청으로부터 '메이드 인 코리아' 증명을 받으려면 반드시 충전전원장치는 국내 기술로 제작돼야 한다. 그만큼 충전기 핵심 장치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2014년부터 3년 동안 전기차 충전기를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분류해 왔다.

국내 완성 급속충전기 기술을 보유한 업체 대부분은 국가 과제를 통해 해당 기술을 확보했고, 지난해까지 자체 개발·생산 업체는 5~6곳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자체 개발 및 생산 제품으로 영업하는 업체는 2곳에 불과하다. 핵심 기술이 없어 중국산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격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애써 개발한 자기 제품 대신 중국산으로 공공 입찰에 참여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중국산 충전기가 공공 시설물에 빠르게 설치되기 시작하자 국내 발주처 사이에서는 제품 안전성과 완성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주처 관계자는 “올해부터 중국 충전기가 국내에 깔리고 있지만 이 충전기는 시장 검증이 안됐을 뿐만 아니라 검증할 인증(평가)에도 한계가 있다”면서 “완성도 높은 국산 충전기도 2~3년 지나면서 유지·보수 건수가 늘고 있는 가운데 중국산은 품질도 문제지만 앞으로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 교체 등 대응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도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중국산 저가 제품 확대로 2000만원 안팎의 급속충전기 가격이 최근 1400만~1500만원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충전기 업체 관계자는 “충전기는 무인설비인데도, 단순한 전력 기기 수준의 국가 인증 이외 성능 및 안전성을 판단할 기준이 약하다”면서 “국가 예산으로 중국 충전기까지 대당 최대 3000만원을 지원하는 게 옳은 건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전력이 지난해 말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구축해, 운영 중인 개방형 전기차 급속 충전소.
한국전력이 지난해 말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구축해, 운영 중인 개방형 전기차 급속 충전소.

한전과 환경공단은 공공용 급속충전기 발주 시 기본 성능과 생산 설비를 갖춘 기업 대상으로 최저가 입찰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와 에너지공단은 충전소 부지까지 확보한 업체에 한해 각각 3000만원, 2000만원을 지원한다. 정부 보조금이 들어간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실 수혜는 중국 업체가 보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