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앞날이 안개 속에 휩싸였다. 재협상 개시 여부를 놓고 양국이 합의 없는 첫 회의를 마친 지 10여일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폐기'를 언급했다. 우리 통상당국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철저히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태풍 피해를 입은 텍사스주 휴스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미 FTA 폐기 여부를 내주부터 참모들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한미 FTA 폐기 준비를 지시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 직후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 폐기를 실행에 옮긴다면, 양국 간 '무역전쟁'은 물론 대북 공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한미동맹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 폐기 혹은 재협상을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서울서 열린 공동위원회 특별회기가 특별한 합의 없이 종료되자, 재협상 압박을 위해 내놓은 '엄포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지 언론도 우려를 드러냈다. '한미 FTA 폐기 검토'를 처음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미국과 동맹인 한국 양국이 북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위기에 직면한 시점에 경제적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폐기 움직임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발언의 진의 파악과 사후 대처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발언의 진의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한미 FTA 폐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부터 발언해온 것인 만큼 협상이 안 되면 폐기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미 FTA가 폐기될 경우 우리 측 유·불리도 (이미) 검토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미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브리핑에서 밝혔듯 미국 측과 열린 자세로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미 FTA는 2007년 조인 후 2012년 발효됐다. 한국은 미국의 6위 상품교역국으로 양국 간 무역규모는 1122억달러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부터 한미 FTA를 '재앙'이나 '끔찍한 협정'으로 규정하며 재협상이나 폐기를 공언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22일 미국 측 요구에 따라 서울에서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열었지만 입장 차만 확인했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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