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지난 4개월 동안의 포석 작업을 마치고 행마를 본격화했다. 9월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 큰 틀에서 정리되는 달이 될 것 같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외교 방향이 가닥을 잡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미국 방문에 이어 7월 초 독일 방문, 지난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참석에 이르기까지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돌았다. 중국, 일본 방문의 마당 외교는 이미 양국 정상을 만나 왔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와 관련해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외교 4원칙'이 좋은 시사점을 줄 것 같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유를 분석,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네 가지 외교 원칙을 세웠다. 첫째 실력과 국력을 넘어서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둘째 외교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 셋째 내정과 외교는 서로 이용하지 않는다. 넷째 세계의 정통한 조류를 타고 간다.
글로벌 사고를 담은 '가치 외교'로 불리는 나카소네의 이 같은 외교 원칙은 현재 일본 외교의 기본 책략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나카소네의 외교 원칙에 비춰 볼 때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비록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북한의 핵ㆍ미사일 문제로 난조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방향타를 놓지 않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실행 능력과 실현 능력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외교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정치 행위란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북한 제재 문제를 논의하면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위한 '9개 다리'(나인 브리지)를 제시한 것은 경제 협력을 통한 '외교 정치'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일자리, 농업, 수산 등 9개 분야에서 협력 가교를 구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북한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나인 브리지'를 대내외 전략의 중요한 코어 가운데 하나로 간주, 이를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서 '나인 브리지' 코어 전략에 어떤 콘텐츠를 담고 어떻게 추진력을 확보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먼저 정부와 민간이 2인 3각으로 힘을 합치고 보조를 맞춰서 '나인 브리지'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2년 전부터 러시아와 12건의 합의문서, 8개 항목, 68건의 지원 사항을 정리한 경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 68건 가운데 에너지 분야가 20건으로 가장 많다. 여기에는 석유가스ㆍ화학에서부터 야채의 온실 재배와 닭고기 생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 밖에 러시아의 산업 다양화, 생산성 향상, 의료ㆍ건강 분야와 중소기업 분야에서의 교류 및 협력 등이 주요 사업으로 들어 있다.
일본이 러시아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의 특징은 정부기관과 정부 산하 독립 행정 법인이 문을 열고, 그 뒤를 민간의 종합상사가 따라 들어가 장터를 만든 다음 관심 기업들이 몰려 들어가는 형식이다. 일본은 최근 극동 러시아와 시베리아 지역 경제특구 건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일본도 러시아와의 경협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크고 작은 실패를 수많이 겪었다. 우리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극동 아시아는 중국과 몽골의 진출까지 감안하면 세계에서 역동성이 가장 큰 경제 각축장이다. 특히 '동방을 점령하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극동 진출 요충지다. 한국은 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유럽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북한이 있다. 이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의 '나인 브리지'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이달 중에 주요 위원회와 자문위의 구성을 완료하고 내각 정비를 마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나인 브리지' 프로젝트 발표를 계기로 이제는 경제에 전념하는 자세를 국민에게 보여 줘야 한다. 미국발 신보호주의가 힘을 더하고 있고 기술 혁신이 하루가 다르게 이뤄지고 있어 그야말로 기업들이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