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자사 모바일 결제 시스템 안드로이드페이의 한국 서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내 카드사에 연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마케팅 비용을 부담하라는 취지의 계약을 추진, 논란을 빚고 있다. 카드업계는 전 세계 수수료 무료를 표방하는 구글 안드로이드페이가 한국에서만 유례없는 독소 조항을 강행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당초 추진하려던 구글 간편 결제의 금융감독원 약관 등록도 전면 유보하기로 했다.
10일 금융권과 정보통신(IT) 업계에 따르면 구글과 카드사 간 안드로이드페이 서비스 계약 항목에 비밀유지협약(NDA) 조건으로 카드사당 연 수억원에 이르는 마케팅 비용을 개런티해야 한다는 독소 조항을 명기했다.
이는 구글 안드로이드페이 진영에 속한 해외 금융사로서는 처음이다. 해외 글로벌 기업이 한국 금융사를 파트너가 아닌 '보조 사업자'로 취급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페이는 해외 시장에서 애플페이와 달리 결제 수수료 무료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오히려 대형 프로모션 등을 통해 협력 금융사에 일정 규모의 페이백을 해 주는 등 상생 방안을 추진해 왔다.
반면에 한국 서비스 추진 과정에서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글 협력 카드사 관계자는 “초기 서비스 론칭 과정에서 현지 금융사와의 협력이 필수인 상황인데 오히려 독소 조항을 넣은 계약을 강행,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라면서 “이 독소 조항은 모든 카드사에 동일하게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NDA 계약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구글 측이 안드로이드페이는 세계 표준이니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면서 “이미 삼성페이, LG페이가 국내에 안착한 상황에서 구글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 줄 필요가 없어 계약 조건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안드로이드페이를 결제할 수 있는 결제단말기 투자도 온전히 현지 금융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 안드로이드페이는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을 활용한 결제 방식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비접촉식 NFC 기반의 결제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가맹점도 거의 없다.
인프라 투자를 국내 금융사가 책임지라는 취지를 밝힌 입장도 확인됐다.
카드업계는 구글이 한국 현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당장 수십억원에 이르는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기엔 구글의 간편결제 경쟁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간편결제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결제가 가능한 인프라도 없는 데다 가맹점 확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비자, 마스터 등 해외 EMV 규격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로컬카드는 구글 안드로이드페이로 사용할 수 없다. 국내 출시가 되더라도 사용처가 매우 제한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현지 금융사에 일방으로 부과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계약서에 명시한 마케팅 비용도 현지 법에 저촉될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만약 카드사가 이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가맹점 대상의 마케팅 비용을 지원할 경우 여신전문금융업법으로 금지한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간주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구글 측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