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각종 매스컴에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귀에 못이 박일 정도다. 또 학계, 산업계, 정부, 지방자치단체를 막론하고 서로 앞 다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한다며 분주하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급속히 감염돼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제대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AI)'이란 개념의 답을 할 것으로 생각 든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족할 만한 수준의 답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답하는 이유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항상 접하게 되는 단어가 'AI'이기 때문이다.
현재 어느 누구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명쾌한 개념, 핵심 기술·서비스를 제시하고 있지 못 하는 실정이지만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을 '인류의 삶과 행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현존 기술에 바탕을 둔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한 신개념 서비스'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러한 개념에서 분명 AI는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제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대부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AI 기술이 재조명돼 각광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는 큰 관심도 없었고 별로 흥미 있어 하지도 않은 기술이었다. 온 힘을 다해 기술 트렌드를 뒤쫓아 가는 연구개발(R&D) 풍토가 상당 부분 우리나라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끌어 왔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부화뇌동하는 풍토가 우리 과학 기술 연구자들을 패스트 팔로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력 양성과 연구 투자가 항상 시류에 편승돼 왔다. 이렇다 보니 현재 우리나라의 AI 전문가 및 관련 연구 기반은 턱없이 빈약한 실정이다. 지난해 3월 AI 알파고 쇼크 이후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자신이 AI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출현하고 있다. 분명 어제까지는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니던 그들이 말이다. 백년대계를 바라봐야 하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작은 입김에도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이끌어 가고 있는 IBM, 구글은 아마도 지금 AI 관련 연구를 우리와 같은 수많은 패스트 팔로워에게 맡기고 대신 본인들은 퍼스트 무버답게 그 무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르다. 만약 그들이 또 다른 신기원을 열어젖히면 우리는 또다시 패스 트팔로워로 열심히 쫓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IBM, 구글과 함께 퍼스트 무버로서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개척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옛날 AI 암흑기에도 기술 선진국은 자부심과 열정으로 묵묵히, 끊임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우리도 기술 시류나 자본을 쫓아가기보다는 청춘의 열정과 시간을 쏟으며 고민하고 연구하던 자신의 기술 분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어떠한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혁신 기술 개발을 실현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진정한 승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며, 나아가 5차 및 6차 산업혁명 태동의 주춧돌을 놓는 선구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는 누구 하나의 노력이 아니라 개별 연구자, 산업체, 국가 정책이 삼위일체가 돼 뜻을 한데 모아 추진했을 때여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안창욱 광주과학기술원 인공지능센터장 cwan@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