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상조 공정위원장과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최근 국내 정보통신업계(ICT)의 화제에 올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잡스를 비교해 “잡스는 미래를 봤는데 이 창업자는 우리 사회에 미래를 보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이 발단이다. 국내 인터넷업계는 반발했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한국과 일본 최고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며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악의로 발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참여정부의 철학을 구현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성공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번 조언에서도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 정도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이해해도 뒷맛은 깔끔하지 않다. 김 위원장 발언에서 뿌리 깊은 사대주의가 읽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지금까지 혁신이나 미래 비전 제시 없이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 않고서 PC, 모바일 시대를 거치며 20년 넘게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야후를 비롯해 무수한 인터넷 기업이 흥망성쇠를 겪었다. 남의 자식 성적이 더 좋다고 공부 잘하는 내 자식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공정위원장은 기업에 미래 비전이나 혁신을 주문하는 자리가 아니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를 엄단해야 하는 자리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네이버는 이 창업자의 총수 지정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공정위 뜻대로 이 창업자가 총수로 지정된 만큼 미래 비전 요구보다 준대기업 총수로서 책임과 시장 공정성 강화를 당부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네이버는 국내 인터넷 생태계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강자다. 공정위라면 당연히 지배력 남용 여부 등을 감시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과도한 기업 흠집 내기는 지양해야 한다. 이 창업자가 공정위를 찾아간 목적은 총수 지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우리사회에 혁신을 가져왔는지 설명하러 간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 고위 관료가 콕 집어 '미래 비전을 보여 주지 못했다'고 폄하할 때 기업 이미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기자수첩]김상조 공정위원장과 스티브 잡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