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가 예정된 가운데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와 제조사 지원금을 별도 공시하는 분리공시제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분리공시제 도입 여부에 따라 새 역사가 시작된다.
단말기 지원금이 이통 시장의 초기 경쟁 활성화 촉매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과열 경쟁과 이용자 차별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상당했음도 분명하다.
옛 정보통신부에 이어 옛 방송통신위원회, 옛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단말기 보조금을 통신 정책의 주요 현안으로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보조금, 이통산업 활성화 기여…부작용도 적지 않아
우리나라 이통 시장에 단말기 보조금이 등장한 것은 20년 전이다. 1996년 2세대(2G)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상용화로 휴대폰 대중화의 길이 열리고,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경쟁 체제가 도입됐다. 이통사는 보조금을 가입자 유치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다. 번화가는 물론 곳곳의 휴대폰 대리점에서도 '공짜폰'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997년 KTF, 한솔엠닷컴, LG텔레콤의 이통 시장 합류로 통신 시장이 5개사 경쟁 체제로 재편되며 보조금 경쟁은 심해졌다.
보조금 경쟁은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확산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97년 690만명이던 휴대폰 가입자는 이통사 경쟁에 힘입어 1999년 2000만명까지 폭풍 성장했다. 거대한 시장 수요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은 글로벌 시장 경쟁을 위한 휴대폰 기술력 축적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과열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통 산업의 건전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통사는 초기투자와 마케팅 과열이 겹치며 부실이 심화됐고, 적자에 시달렸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사태 이후 외산 단말기와 부품에 따른 외화 유출 논란도 커졌다.
◇2003년, 보조금 규제 법제화
정보통신부는 재정경제부와 보조금 규제 대책을 마련했다. 2000년 6월 정통부는 행정 지도를 통해 이통사의 이용 약관에 보조금 지급 금지를 명시했다. 그러나 법률 구속력이 미약한 행정 지도로 과열 경쟁을 막기는 어려웠다.
정통부는 2003년 3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 보조금을 금지했다. 다만 이통 시장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우려에 따라 보조금 금지 규정은 3년 후 일몰로 제정한다.
정부와 이통사 간 보조금을 둘러싼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은 보조금을 불법화하면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수합병(M&A)을 거쳐 SK텔레콤, KTF, LG텔레콤 3개 사업자로 재편된 이통사는 새로운 서비스나 단말기를 출시할 때마다 많은 보조금을 투입했다.
정부는 법률을 근거로 처벌 수위를 강화했다. 2002년 정통부는 이통사에 33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6년에는 730억원을 부과했다.
2006년 3월로 예정된 보조금 규제 일몰 기간이 다가오자 보조금은 또다시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정통부와 국회 간에는 규제 완화 논리와 이용자 차별 금지 논리가 팽팽히 맞섰다. 결국 보조금 규제 틀을 유지하되 장기 가입자와 신규 서비스 혜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마련했다.
그해 3월 국회는 보조금규제법 일몰을 2년 연장하되 18개월 이상 장기 가입자와 3세대(3G) 이통, 와이브로에 한해 번호 이동 등 신규 가입 시 보조금을 허용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010년 이후 규제 “호갱을 막아라”
5년 동안 지속된 '보조금 금지법'은 2008년 3월 예정대로 최종 일몰됐다. 보조금 규제 해제와 맞물려 2009년 말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하는 등 이통 시장 패러다임이 스마트폰 위주로 변화하면서 과열 경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방통위는 법률 제정 대신 27만원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관리 체계를 마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폰과 갤럭시 등 스마트폰 혁신 제품 경쟁이 본격화하고, 롱텀에벌루션(LTE)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보조금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2012년 갤럭시S3 대란은 보조금 규제에 기름을 부었다.
이전에도 이따금 보조금 대란이 있었지만 출고가 99만원인 갤럭시S3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17만원에 판매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론화됐다. '호갱(호구고객)'을 막아야 한다는 논의를 촉발, 이동통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제정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2014년 미래부는 국회 논의를 거쳐 단통법을 제정했다. 이른바 지원금 규제 완성판이다. 지원금 지급 자체는 합법으로 인정하되 지역과 가입 유형에 따른 차별을 없앴다. 소비자가 지원금을 원하지 않을 경우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제(선택약정할인제)'로 그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로 보장했다.
단통법 이후에도 이통사는 간간이 지원금 대란을 벌였다. 통신비의 핵심 요소인 단말기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논의 속에 지원금 규제를 소비자 혜택과 산업 균형 발전 아래 개혁하는 일이 이통 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단말기 지원금은 시장 성장기에 가입자 유입 효과가 컸지만 성숙기에 접어듦에 따라 기존 가입자의 단말 교체 수요를 자극하고 경쟁사 가입자를 전환하는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통 시장 측면에서 소모성이 커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