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전기차 육성 정책으로 현지 이차전지 업체가 공격적인 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국내 장비 업계가 수혜를 입고 있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이차전지 장비 업체의 중국발 수주 공시가 이어지고 있다. 금액도 연간 매출의 10~30% 수준으로 규모도 작지 않다.
롤투롤(Roll-to-Roll) 방식 이차전지 제조장비를 만드는 피엔티는 지난 1일 중국 업체에 303억원 규모 이차전지 전극공정 장비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28%에 해당하는 대형 계약이다. 계약 상대방은 영업비밀 보호요청에 따라 밝히지 않았다.
이차전지 전공정 장비를 만드는 씨아이에스도 지난달 중국 푸지엔성과 상하이에 위치한 업체와 각각 83억원과 46억원 규모의 전극공정 제조장비를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초에는 EVE에너지에 28억원 규모로 양·음극 프레스 장비를 한 대씩 공급했다.
파우치형 이차전지 조립공정에 쓰이는 노칭 장비와 폴딩 장비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디에이테크놀로지는 중국 이트러스트파워그룹에 210억원 규모 배터리 제조장비 선적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완샹 A123 시스템에 74억원 규모 이차전지 생산 장비를 공급한다고 공시했다.
이차전지 활성화 공정 장비를 공급하는 피앤이솔루션은 EVE에너지로부터 올해 각각 86억원과 132억원 규모 충·방전 장비를 수주했다.
파우치형 이차전지 생산라인 중 조립공정과 디가싱 공정에 쓰이는 장비를 턴키 방식으로 공급하는 엔에스도 올해 중국 MGL과 62억원, 완샹 A123시스템과 71억원, EVE에너지와 46억원 규모 이차전지 제조 설비 공급 계약을 잇따라 맺었다.
국내 이차전지 제조설비 업체의 중국 진출이 확대되면서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엔에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80%에 이른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최근 중국 정부의 자국 배터리 산업 육성과 사드 배치 보복 조치 등으로 중국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장비업체에는 이 같은 상황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한 장비 업체 관계자는 “자동차 배터리의 경우 안전성이 극도로 요구되다보니 현지 장비 업체의 기술력으로 품질을 맞추기 어려워 고객사에서 노골적으로 중국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국내 배터리 제조사가 중국에서 겪는 어려움이 중국 배터리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치고 나가야 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장비 업체는 반사이익을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는 3000여곳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업체만 해도 300여곳으로 삼성SDI나 LG화학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춘 곳도 5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