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작(扁鵲)에게 위(魏)의 문왕(文王)이 물었다.
“그대 3형제 중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 의원이오?”
편작이 답하였다.
“맏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형이 그 다음이며, 저 편작은 가장 못합니다.”
위 문왕이 물었다.
“어찌 그런지 들을 수 있겠소?”
편작이 말했다.
“맏형은 병이 있기 전에 그 원인을 보고 병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그 명성이 집밖을 나가지 못하지요. 둘째형은 병이 미미하게 시작될 때(在毫毛) 치료해버리니 그 명성은 마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혈맥에 침을 놓고 독한 약을 쓰고 살갗을 찢어서 병을 누그러뜨립니다. 그랬더니 명성이 제후들에게까지 들리도록 나게 된 것입니다.”
-갈관자(〃冠子) 세현(世賢)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춘추시대의 신의(神醫) 편작(扁鵲)에게는 그보다 뛰어난 의술을 가진 형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방이나 조기치료로 환자를 다루었기에, 환자에게는 더없이 바람직하였겠지만 그 명성은 널리 퍼지지 못했다는 고사이다.
매사가 그러하다. 의사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기업 등 조직 내 업무에서도 그렇다. 사전에 잘 헤아려 가볍게 호미로 조기에 예방할 수도 있고, 그것을 제때 손보질 못해 가래로도 감당하지 못할 큰일로 확대시키기도 한다. 애초 아무 일이 나타나지 않도록 잘 예방한 공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응당 그러려니 여겨지고, 이미 큰 사고로 확대된 것을 힘들여 수습한 사람의 공로는 대단히 크게 인정되는 게 인간사다.
예방이나 조기 대응의 중요성은 우리 변리사들의 업무 영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특허 출원을 예로 들면 고객이 특허 출원을 의뢰하러 변리사를 찾아왔을 때는 대체로 이미 기술 개발이 완료된 상태이다. 많은 인력, 시간 및 자본을 투여하여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타인이 모방하지 못하도록 특허로 보호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변리사가 발명의 내용을 접수하여 특허 출원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대체로 출원 의뢰건 중 70% 이상이 특허 등록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변리사의 손에서 걸러진다. 변리사가 선행기술을 조사하여 신규성이나 진보성이 인정된다고 보아 출원으로 이어지는 발명은 30%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사전 검토를 거쳐 출원된 발명이라 하더라도 대체로 70% 정도만 심사를 통과하여 특허로 등록된다. 결국은 특허 출원을 의도한 발명 중 20% 정도만이 특허 등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특허 취득의 실패는 다른 문제로 연결된다.
우선 그 발명 개발에 투입한 노력과 자원이 무위로 돌아간다. 특허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이미 그 발명과 실질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 개발돼 공개돼 있다는 말이다. 많은 경우 무상으로 갖다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니 헛고생을 한 것이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었을 거라는 기회이익의 상실감이 작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힘들여 개발했던 기술이 남의 다른 특허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행기술 존재를 이유로 특허를 받지 못하게 될 때 그 선행기술의 특허에 저촉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부득이 선행특허에 저촉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을 다시 개발해야 한다. 시지프스가 산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노력을 반복하듯이.
이런 상황에서 많은 변리사들은 편작과 같은 노력을 발명자에게 제공한다. 발명의 특허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그 발명의 특허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때 당초의 발명과 전혀 다른 방향의 새로운 발명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 발명이 선행특허에 저촉되는 것으로 판단되면, 침해를 회피할 방안을 고심하여 그 길을 모색하고 제시해준다. 이런 서비스는 대부분의 변리사가 각 기술 분야에서 많은 실무를 통해 풍부히 축적된 지식을 갖춘 엔지니어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니 통념을 벗어난 매우 뛰어난 기술 컨설턴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근원적 처치는 발명을 근본적으로 급격히 방향 전환해야 하니 발명자에게는 지극히 고통스럽고 힘든 자기부정의 작업이 될 수 있다. 독한 약이나 외과적 수술로 성숙된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특허 전략과 관련해 외과 수술적인 급격한 방향전환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발명가 김동환 대표의 매우 쉽고 지혜로운 발명법을 소개한다. 김동환 대표는 우리와 약 25년간 친분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약 300건 정도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의 발명은 라이트펜, 발광봉, 도로표지병, 저염소금, 파리잡는 장치, 방음판 커버, 골무 등 폭넓은 장르를 아우른다.
이 분의 발명은 나한테 전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관심 분야만 언급한다. 예를 들어 “어젯밤에 신호 위반으로 딱지를 끊었는데, 경찰이 플래시를 어깨 쪽 목에 끼고 딱지에 내용을 기재하는 모습이 딱하다. 볼펜에서 조명이 나오면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즉시 담당자를 시켜 관련 특허자료를 두루 찾아서 보내준다.
자료를 하루이틀 검토한 뒤 나름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대충 그림으로 그려 보내온다. 그것으로 기술적인 실현가능성, 경제성, 특허가능성 등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편하게 이야기한다. 간혹 대안 확보의 실패로 포기한 아이디어도 적지 않지만, 대체로 몇 번의 아이디어 수정과 협의를 거치면서 발명이 구체화된다.
그렇게 확정한 발명은 선행기술에 대한 충분한 학습을 거쳤고, 제조기술, 시장성, 경제성, 특허리스크, 특허가능성 및 시장지배력까지 폭넓은 검토를 거친 매우 야무진 실전 기술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러니 발명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너무도 편안하고 그 결과는 지극히 실질적이고도 위험이 없으며, 특허 취득 실패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변리사가 표나게 노력해준 것도 없으니 비용도 출원 비용 외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예비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혼자서 발명(병)을 성숙시켜 변리사를 찾으면 온갖 고통은 스스로 부담하면서 담당 변리사의 명성만 높여줄 뿐이다. 이렇듯 질병이든 기술 개발이든 예비 단계나 초기 단계에서 의사나 변리사를 만나서 조언을 구하라. 그러면 매우 효율적이고도 경제적이면서 대부분의 리스크를 미리 확실하게 걸러낼 수 있다.
결국 가장 뛰어난 의원은 환자 본인이다. 의원을 만나는 타이밍이 명의의 등급을 사실상 결정하며, 그 타이밍은 환자만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뛰어난 특허 전략의 전문가는 발명자 본인이다. 변리사의 가벼운 조언을 바탕으로 최고의 발명을 도출하고 그것을 최적의 권리로 승화시킬 수 있는 타이밍과 과정을 선택하고 진행하는 것은 오로지 발명자 본인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이밍과 절차를 자유롭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평소에 변리사와 충분히 친분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의사 친구 한 사람쯤 친하게 사귀어두면 좋듯이, 기업을 건강하게 경영하려면 변리사 친구를 한 사람쯤 친해 두어야 한다. 언제라도 전화를 해서 자료를 요청하고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리스크는 없는지 물어볼 수 있으면 무척 편할 것이다.
그런데, 변리사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들지 않겠느냐고?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모든 변리사들은 발명자나 기업인과 친구가 되고 싶어 오매불망 여러분들이 손을 내밀어 주길 갈망하고 있다. 비즈니스의 성공은 창의력과 전략의 결과이다. 창의력과 전략은 '열심히'보다는 '지혜롭게'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변리사들은 기업인들의 지혜로운 경영을 돕기 위해 언제라도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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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hsw@swpa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