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기술의 결합을 의미하는 핀테크(Fintech)는 이미 널리 알려진 신조어다. 핀테크 산업을 발전을 지원던겠다며 2015년부터 정부는 각종 규제와 제도 혁신을 예고했지만 국내 핀테크 산업 발전은 더디다. 금융회사는 금융 회사대로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고, 기술 기업은 높은 금융권 진입 장벽에 막혀 2년여가 흘렀다.
업계는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금융업을 별도 산업이 아닌 실물 경제를 지원하는 보조 수단으로 여기는 관행에서 찾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금융홀대론'은 오해라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그간 정부의 금융 산업 육성 의지는 '뒷전'에 밀려왔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금융 산업도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됐다. 더 이상은 과거처럼 금리 차이에 따른 예대마진과 주식·채권을 단순 위탁매매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금융 산업도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준비에 나서야 한다.
◇강점(Strength), IT기술로 승부하라
한국 금융 산업의 최대 강점은 세계적 IT기술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최근에야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실시간 자금이체시스템을 2001년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금융정보화 영역에서는 가장 빠른 속도로 금융IT 인프라를 갖췄다. 빠른 ICT 기술 발전에 따라 금융IT 인프라는 우리 금융 산업이 가장 강점을 가진 분야다.
실제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뱅킹 규모는 하루 평균 3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커졌다. 인터넷뱅킹으로 범위를 넓히면 하루 평균 전자금융을 통한 거래액은 42조4247억원에 이른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한 주식매매 거래 규모는 지난해 4조9500억원을 기록했다.
전자지급서비스도 급증세다. 온라인쇼핑거래와 간편송금서비스 이용이 증가하면서 IT 기반 거래는 지속 확대 추세다. 지난해 전자지급거래서비스 규모는 3435억원으로 전년(2524억원) 대비 36.1%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는 금융IT 인프라 수출을 필두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각 증권사는 HTS·MTS를 필두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공동 사업이 필요한 금융정보화 분야에 정부와 협·단체가 협력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우리 금융 산업의 최대 강점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을 금융영역에 결합하려는 시도도 업계 전반에 불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를 시작으로 은행연합회 등 금융권 각 협·단체는 내년을 목표로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약점(Weakness), 천편일률 수익구조 차별성이 없다
국내 금융 산업의 가장 큰 약점은 차별성이 없는 수익구조다. 수익성 확보에 급급해 자금조달이 필요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대신 가계 대출 확대에만 치중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은행 총 대출의 27.7%에 불과했던 가계대출 비중은 지난해 말 43.4%까지 상승했다. 기업자금 대출에 집중하던 시중은행마저 가계 대출에 집중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1999년까지 23.9%에 불과하던 신한은행의 가계 대출은 지난해 전체 대출에서 51%까지 증가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가계 대출도 같은 기간 각각 28.2%에서 54%, 25.2%에서 53.6%로 늘었다.
금융투자업계도 마찬가지다. 증권사의 전통적 수익원인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점차 줄고 있다. 2007년까지 6조5000억원 안팎이던 위탁매매 수수료는 2010년 이후 3조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수수료가 일시 늘었지만 하향 추세를 막기 어려운 현실이다.
단기성과를 중요시 하는 경영행태도 우리 금융 산업의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은행장의 짧은 임기와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는 단기성과 중심의 경영을 유발하고 있다. 금융투자회사의 취약한 자본력도 약점이다. 미래에셋대우가 7조8000억원의 자기자본을 확충하며 국내 최대 규모 증권사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글로벌 투자은행(IB)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국내 IB가 경쟁자로 삼는 골드만삭스의 자기자본은 100조원에 달한다.
◇기회(Opportunity), 기업 금융 확대·안정적 상품, 금융 본연 역할 찾아라
금융권의 새로운 기회는 역설적으로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전통적 금융 산업에서 나올 전망이다. 여전히 국내 금융시장의 자금중개 기능은 대출 등 간접금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기업금융잔액 1569조원 가운데 은행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6.9%로 1049조원에 이른다. 장기자금과 신설·벤처기업을 위한 자금 공급 수요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간 부실 우려 등을 이유로 기업대출을 꺼리고 가계대출에 집중했던 은행권과 초대형 투자은행(IB) 제도 도입으로 법인 신용공여 등이 허용된 금융투자업계 모두 기업에 대한 직접금융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자산 관리 수요 증가도 금융 산업 발전의 기회다. 은행의 자산관리서비스 부문 진출과 증권사의 투자은행 업무 강화는 자연스레 금융업 전체 부가가치를 더욱 끌어올려 수익구조를 다각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금융자산 축적은 금융 산업 전체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는 자연스레 퇴직연금 등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가 앞 다퉈 로보어드바이저(RA) 등 자산관리 상품을 선보이는 이유도 예·적금보다 높은 금리로 안전하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Threat), 대내외 변수에 대응할 체력 길러야
금융 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73년 14.8%를 기록한 이후 장기 하락 추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장세가 크게 꺾이고 잠재성장률도 하락하고 있다. 고령화, 생산가능 인구 감소, 주력산업의 위기 등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압력은 금융 산업 위기로도 작용한다.
실물경제 회복이 지연되면서 금융 전체 순수익 성장률은 2005~2010년 7.5%에서 2011~2015년 2.4%로 크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은행업은 7.4%에서 〃3.7%로 하락했다. 증권업계는 6.0%에서 4.5%로, 생명보험업은 14.1%에서 4,6%로 크게 둔화됐다. 실물경제를 책임지는 주체이자 최종 소비자인 가계와 기업의 부실은 자연스레 금융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금융 산업 자체 혁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ICT 융합은 기존 금융 산업의 최대 위기가 될 수 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은행권 패러다임 변화는 시작일 뿐이다. 특히 지점과 인력 등 고정비용을 줄인 핀테크 기업의 금융 산업 진입은 기존 회사와 대대적 가격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시장 구조에는 큰 변화 없이 가격만 내려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핀테크 혁신을 소멸적 혁신이 아니라 혁신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존 금융 산업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SWOT분석(자료:한국금융연구원, 보험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및 업계 취합)>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