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4차 산업혁명에 접속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로봇 등 최신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쇼핑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유통시장에서는 매일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활동이 수없이 반복된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 신기술을 상용화와 고도화에 유리한 '테스트베드'다.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스마트 쇼핑' 시장에 뛰어든 유통업계와 ICT 업계 간 합종연횡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 ICT로 신시장 개척 드라이브
백화점과 대형마트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유통은 온라인·모바일 쇼핑 대중화에 따라 고객 이탈과 수익 악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유통 대기업은 최근 잇달아 AI, IoT, VR 등 ICT를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반등을 노리고 있다. 고객이 일일이 매장을 방문해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오프라인 유통 채널 한계를 넘는 것은 물론 비대면 채널로 이탈한 고객을 다시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편다.
롯데는 오프라인 중심 대기업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전통 사업 방식만 고집하면 시장에서 도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상반기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전통 방식 기업에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면서 “롯데가 추진하는 사업과 신기술 간 연결 고리를 찾아야한다”고 주문했다.
롯데는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쇼핑 경험을 제공한다는 '옴니채널' 전략으로 수요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내 IBM 왓슨 AI를 활용한 챗봇 기반 애플리케이션(앱) '쇼핑 어드바이저'를 선보일 계획이다. 고객들이 챗봇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상품 추천 및 매장 설명, 온라인 픽업 서비스 안내 등을 받아볼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업계 처음으로 고객 맞춤형 일대일 소통 서비스 'S마인드'를 선보였다. 신세계I&C, 데이터 분석 업체와 4년 간 개발한 자체 AI 솔루션이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디렉트 메일(DM)'에서 벗어나 개인화 마케팅 기반을 확보한 셈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업계는 사람이 없는 무인점포와 셀프계산대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고객이 쇼핑에 소요하는 시간을 줄여 더 많은 소비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인건비를 줄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실제로 롯데 계열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상반기에 세계 최초의 무인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열었다. 롯데카드, 롯데정보통신 등 그룹 계열사 ICT 역량을 한데 모은 결과물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 진화 속도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에서 무인 서비스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오프라인 업종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 유통, 4차 산업혁명 중심으로
온라인 유통은 4차 산업혁명 트렌드를 가장 적극 활용하고 있는 산업군이다. 모바일과 온라인 채널 특성상 다른 산업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ICT 융합 서비스를 상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사업자는 고객 스마트폰과 PC를 매개로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공하며 모객 효과와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편다.
챗봇(Chat Bot)은 최근 온라인쇼핑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스마트 쇼핑 서비스다. 고객들은 챗봇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형태로 다양한 쇼핑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고객서비스(CS) 담당 직원은 특정 시간에 고객 한 명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AI 기반 챗봇은 중앙서버에 접속하는 고객들을 동시 다발로 대응할 수 있어 업무 효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온라인 유통업계가 앞다퉈 챗봇을 도입하고 고도화하는 이유다.
현재 인터파크, SK플래닛 11번가, 메이크샵 등 다양한 온라인쇼핑 사업자가 챗봇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미스터피자, 동원그룹 동원몰 등 전통 식품·외식 업계도 AI 기반 챗봇을 선보이는 추세다.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에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히든카드로 분석된다.
AI를 기업간거래(B2B) 솔루션으로 활용하는 사업자도 늘고 있다. 카페24가 도입한 AI 기반 '부하 탐지 예측 시스템'이 대표 사례다. 해당 시스템은 특정 쇼핑몰에서 트래픽이 급증하면 이를 인지해 활용 서버 수를 확대한다. AI가 접속 트래픽을 자동으로 분산해서 사이트를 안정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온라인 유통업계는 앞으로도 새로운 스마트 쇼핑 서비스 개발에 속도를 낸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사업자별 가격·상품 경쟁력이 상향평준화하기 때문이다.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경쟁사보다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쇼핑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업계는 AI와 챗봇은 물론 VR, 생체인식, 간편 결제 등 차별화한 ICT 쇼핑 서비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오픈마켓 관계자는 “각 사업자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기술 및 서비스 차별화를 추진한다”면서 “전자상거래 시장이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유통서 4차 산업혁명 꽃피운다
정부는 유통산업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을 앞당기는 인큐베이터로 육성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ICT 기반 쇼핑 서비스가 등장하며 새로운 시장 수요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코리아 세일 페스타에서 'VR 스토어'를 선보인다. 온라인에서 마치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한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하며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백화점을 비롯한 주요 유통 사업자와 전통시장, 거리상권이 VR 스토어에 참여한다. 정부가 유통시장을 ICT 활성화를 위한 기반으로 낙점했다.
산업부는 내년부터 유통 산업 글로벌 플랫폼 구축을 위해 4차 산업혁명 신기술 실증 사업 및 상용화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15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지난 2월 유통산업에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유통 산업 융합 얼라이언스'를 발족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 △융합·협업 연구개발(R&D) 과제 발굴 △민간 표준 개발·보급 등을 수행할 계획이다.
윤희석 유통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