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부터 줄이 시작됐다. 오전 10시경 200m 넘게 이어진 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청년들이 초조하게 현장 면접을 기다렸다. 13일 서울 동대문 DDP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장의 모습이다.
이날 행사는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및 여신금융협회는 53개 금융회사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열렸다. 행사 이름처럼 '청년희망 실현을 위한'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금융사는 채용박람회를 계기로 올해 하반기에 전년대비 680명 늘어난 총 4817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박람회에 참여하지 않은 금융사까지 포함하면 약 1000여명이 증가한 6600여명을 신규 채용한다.
예년보다 채용규모가 늘었지만 일자리 전망은 밝지 않다. IT기술 도입으로 금융권 비대면거래와 자동화서비스 개발이 늘어나고 있다. 오프라인 점포가 줄어들고 기존 금융권 수익모델도 위협 받는다.
박람회에 참가한 정부·금융업계 수장 축사에도 줄어드는 일자리 고민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앞으로 1년이 일자리 골든타임으로 일회성·보여주기 행사가 아니라 실질 채용 확대를 해 달라”며 “에코붐세대(베이비붐 자녀세대)가 진입하는 2~3년 후에 취업은 정부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사가 사회적 책임을 위해 채용을 늘려도 실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 부담만 증가한다. 금융사는 혁신 서비스로 수요를 창출하고, 정부는 금융규제 개편 및 기술금융제도 개선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먼저 금융회사 업무범위가 확대되고 수익성이 제고돼야 한다”며 권역별 영업규제를 전면 재검토와 금융업 인·허가체계 개편을 약속했다.
핀테크 등장으로 새로 생긴 일자리도 있다. 문턱 높은 금융공기업도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준비하며 채용규모를 늘렸다.
이병래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은 “작년에 18명을 채용했는데 올해는 2배 수준인 39명까지 채용을 늘렸다”며 “전자증권 도입 때문에 IT부문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핀테크 기업도 신규 채용에 나섰다.
비대면 금융거래 솔루션 기업 피노텍, 통합 보험 자산관리 서비스 기업 레드벨벳벤처스는 두 자리 이상 채용한다.
유용환 피노텍 대표 “독일에 조인트벤처가 만들어졌고 포르투갈 진출도 앞두고 있다”며 “중소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우수 인재가 오지 않는 것이 문제지, 채용규모는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고 전했다.
핀테크 도전은 채용박람회 모습에도 변화를 주었다. 케이뱅크 채용부스는 면접자와 구직자 모두 까만 정장을 입은 다른 금융회사 채용부스와 달리 캐주얼한 복장이다.
케이뱅크는 이달 말 출범 이래 첫 신입 공개채용을 한다. 인원은 확정하지 않았지만, 금융상품 기획부터 IT서비스 개발까지 폭넓게 뽑을 예정이다.
케이뱅크 채용상담을 받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 A씨는 “IT관련 직군을 찾고 있는데 새로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에 관심이 생겨 방문했다”며 “양복을 차려입고 면접을 진행하는 다른 금융사 부스에 비해 분위기가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명희 경제금융증권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