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중소벤처기업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다섯 달이 지나도록 수장을 찾지 못했다. 최종 결재자가 없어 공들여 만든 정책도 내놓지 못한다. 사실상 방치 상태다.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 벤처인증제도 개편 등 중기부가 내건 핵심 과제는 첫 발도 떼지 못했다. 심지어 타 경제부처에 각종 정책 주도권을 뺏길까 노심초사다.
24일 중기부에 따르면 장관 선임이 미뤄지면서 지난달 말 발표하기로 했던 창업활성화대책(가칭)은 다음 달로 미뤄졌다. 창업활성화대책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테크노파크 통합, 기술보증기금 등 중기부 산하기관으로 편입된 기관 역할 재정립과 규제, 벤처인증 등 창업 생태계에 대한 대책이 담겼다.
중기부 관계자는 “창업활성화 대책을 준비했지만 장관 선임으로 발표를 미루고 있다”며 “창업관련 대책이 장관 철학과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장관 선임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관 인선이 미뤄지면서 중기부가 중심이 돼야 하는 벤처·중소기업 정책을 다른 부처가 선점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첫 현장방문으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PLK테크놀로지를 택했다. 이날 현장방문에는 김 부총리뿐만 아니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얼굴을 비추며 새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의지를 강조했다. 이날 자리에 중기부는 없었다.
중기부 관계자는 “기업을 추천한 것도 중기부고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것도 중기부인데 장관 인선이 미뤄지면서 정작 현장방문에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중기부가 준비한 각종 대책 발표가 늦어지는 사이 유관 부처는 저마다 중소기업 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공정위는 이달 들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기술유용 근절 대책'을 내놓고 직권조사 강화, 기술심사자문위원회 신설·운영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도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금융권 모험투자 확대를 통해 벤처·중소기업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한 정부 관계자는 “8월 전부터 창업활성화대책 발표를 위해 유관기관 실무자가 모두 모여 사회적 금융 확대, 모험자본 활성화 등을 논의했고 각 부처가 새 정부 방향성을 공유했다”면서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각 부처에서 먼저 풀어갈 수 있는 과제를 우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했다.
다른 부처와 협의없이 단독 추진할 수 있는 정책도 발목이 잡혀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테크노파크는 사실상 업무 마비 상태에 놓였다. 당초 창업활성화 대책방향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창업초기기업 육성, 테크노파크가 이후 단계 기업육성을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혁신센터별 역할과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관계자는 “정부 발표가 늦어지면서 내년도 사업계획 작성에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을 중심으로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지만 역할이 조정되면 사업계획도 다시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계는 정부의 규제 혁신 방안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월 중기부 관계자는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토론회에 참석해 “중기부 내 칸막이 규제만이라도 모두 내려놓고 8월 중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규제프리존 등이 도입될지, 일부 업종에 대한 규제를 풀 것인지 등에 대한 정책방향은 오리무중이다. 업계는 차량공유서비스와 핀테크분야 규제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지만 해결 여부는 미지수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스타트업은 정부 규제에 따라 사업의 운명이 갈린다”면서 “어떤 방향으로 규제가 풀릴지 알 수 없어 정부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중기부가 내년에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할지에 대한 계획수립”이라면서 “빠른 시일 내 장관 선임을 완료해 중소기업 생태계 전반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