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통신필수설비 원칙

필수설비가 역사에 등장한 건 1912년이다. 민간사업자로 구성된 미국 세인트루이스 철도협회는 철교가 사유재산이라며, 비회원사의 역 진입을 봉쇄했다. 미국 법원은 사유 재산이라는 이유로 제3자 사용을 금지한다면, 경쟁사 진입이 원천 차단돼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필수설비(Essential Facility)'에 해당하므로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기자수첩]통신필수설비 원칙

사유재산을 절대 가치로 인정하던 기존 패러다임을 뒤집는 판결이었다. 필수설비 개념은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철도와 통신, 전기 등 공적 인프라 산업 규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정부는 2000년대초 공기업이던 KT를 민영화하면서 통신 필수설비 개념을 도입했다. 국가 재산인 관로와 통신선, 전신주 등 통신필수설비를 인수한 KT가 경쟁사 요청이 있을 경우 반드시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통신 필수설비가 의무화된지 15년이 지난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KT 필수설비 제공 의무를 강화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제도 실효성과 적용 범위를 확대,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을 앞당기고, 초고속인터넷 이용자 혜택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반영했다.

이해관계자 간 논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필수설비에 대한 KT의 사유재산권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대체 불가능성 여부 등을 놓고 전운이 감돈다.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논쟁의 치열함이 재연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통신 필수설비 규제 소관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았다. 논쟁을 정리해 효과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법률은 최우선 원칙이다. 무엇보다 현재 법률이 적절한지 살피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개정 방안을 마련해 정책이 실효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정확한 데이터도 필수다. KT는 필수설비 제공률이 96% 이른다고 제시했지만, 경쟁사는 KT가 제공 지역이 너무 적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나서서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결론은 정확하고 공정하되, 최대한 빠르게 내려야 한다. 5G와 인공지능(AI) 등 혁신을 앞둔 통신시장이 소모적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정체해선 안된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