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화상, 골절, 절단 등 실험실 안전 사고가 급증하는데도 정부의 현장 점검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실 91%가 사각지대에 놓였다. 대학 실험실의 안전사고가 빈발, 청년 과학자·공학도가 위험에 노출됐다. 상황이 이런 데도 관련 예산은 소폭 증가하거나 전액 삭감됐다.
26일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연구실 현장 검사를 실시한 기관은 400개에 그쳤다. 같은 기간 연구실 안전 관리 대상 기관은 4611곳에 달했다. 현장 점검률이 8.7%에 불과했다.
연구실 안전사고는 지난 3년 사이 갑절 이상 폭증했다. 지난해에는 하루 한 나절(1.4일)당 1회 꼴로 사고가 날 정도였다. 통계는 보고된 사고 기준으로만 작성됐다. 각종 화학 물질을 다루는 실험실이 사고에 무방비인데도 정부 감독은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과기정통부가 제출한 '기관별 연구실 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2013년 112건이던 연구실 사고는 2014년 175건, 2015년 215건, 2016년 270건으로 매년 늘었다. 올해 8월까지 발생한 사고는 142건으로 집계됐다.
2013년부터 올해 8월까지 사고 가운데 83.2%가 대학 연구실에서 발생했다. 같은 기간 대학에서 760건, 국·공립 및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 연구기관에서 92건, 기업 부설연구소에서 5건의 사고가 각각 발생했다. 청년 과학자·공학도가 많은 대학이 안전에 취약했다.
전체 4611곳 연구소 가운데 대학은 359곳, 연구기관은 240곳, 기업 부설연구소는 4062곳으로 나타났다. 대학은 359곳에서 215건 사고가 발생, 산술 상 2곳 가운데 1곳 이상이 사고를 겪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연구실 안전 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장 조사 및 교육, 홍보, 우수연구실 인증 등의 정책을 펼쳤다. 위반 행위를 적발,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해 25개 기관에 37건 과태료 부과 조치가 이뤄졌다. 그 가운데 대학이 20건을 차지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53개 기관이 30건의 과태료 조치를 받았다.
김경진 의원은 “위반 사항을 살펴보면 연구실 내 인식 부족, 자체 관리 소홀에 의한 사항이 많다”면서 “위반 행위를 적발해도 50만~450만원 과태료 부과에만 그쳐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정부 인력과 예산도 부족하다. 과기정통부 내 연구실 안전 관리 조직은 정식 과가 아닌 자율 팀(연구환경안전팀) 형태로 존재한다. 이 팀이 기업연구소, 국공립·출연 연구기관, 대학까지 모든 연구실 안전을 관리한다.
과기정통부 연구실 안전 환경 구축 예산은 올해 58억원에 그쳤다. 내년도 요구 예산은 62억원이다. 이 예산으로 4000곳 이상을 점검, 교육하고 환경 개선을 지원해야 한다. 이 가운데 대학 지원 예산은 10억원에 불과하다.
국립대학을 관장하는 교육부의 예산은 아예 삭감됐다. 2016년 '국립대학 실험실습실 안전환경 기반 조성' 목적으로 편성되던 250억원의 예산이 올해에는 사라졌다. 내년에도 실험실 안전장비 확충, 점검, 교육 예산이 없다. 과기정통부와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과거 보고 자체를 누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과태료를 적극 부과하면서 보고 비율이 높아진 것은 개선된 부분”이라면서 “아직 안전 의식이 낮은 경우가 많고, 일일이 점검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느슨한 규제를 틈타 안전 불감증이 싹튼다는 지적이 높다. 최근 3년 간 최초 검사 후 후속 조치 미흡으로 재검을 받은 기관이 51곳에 이른다. 대학이 38건으로 가장 많았다. 국립암센터, 국립수산과학관, 국립환경과학원 등 국가기관도 포함됐다.
김 의원은 “선진국은 연구실 내 안전 전담 조직을 운영하지만 우리나라는 안전보다 성과를 우선하는 연구 문화 속에서 안전이 후순위로 밀려왔다”면서 “안전 불감형 인재를 예방하도록 안전 교육, 인식 강화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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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연구실 현장검사 기관 수(자료 : 과기정통부, 김경진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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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별 연구실 사고발생 현황(자료 : 과기정통부, 김경진 의원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 안영국 정치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