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도시바 투자 의결…최태원 회장 급거 일본행

SK하이닉스가 이사회를 열고 도시바메모리 투자를 의결했다. 이날 의결은 도시바 발표에 대한 매수자 주체의 최종 결정인 셈이다. 도시바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SK하이닉스, 미국 베인캐피탈 등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도시바메모리를 매각키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간 도시바는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놓고 SK하이닉스 혹은 웨스턴디지털(WD) 진영을 오가며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더 이상 계약을 미룰 수 없었다. 아주 큰 변수가 없는 한 도시바메모리는 한·미·일 연합 품에 안길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27일 이사회를 열고 도시바메모리 투자 건을 의결했다.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메모리 인수금액은 2조엔(약 20조원)이다. 이 가운데 SK하이닉스의 투자금액은 3950억엔(약 4조원)이다. 이 중 1290억엔(약 1조3000억원)은 전환사채(CB) 형식으로 투자한다. 향후 적법 절차를 거쳐 전환 시 SK하이닉스는 도시바메모리에 대한 의결권 지분율을 15%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나머지 2660억엔(약 2조7000억원)은 베인캐피탈이 조성할 펀드에 펀드출자자(LP:limited partner) 형태로 투자, 도시바메모리가 상장됐을 때 자본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됐다.

한미일 연합에는 SK하이닉스과 베인캐피탈을 포함, 도시바, 호야, 애플, 킹스톤, 시게이트, 델 등 다수 업체가 참여한다.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탈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도시바, 호야의 의결권 지분율은 각각 49.9%, 40.2%, 9.9%다. 애플·킹스톤·시게이트·델 등은 사채형 우선주 형태로 투자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계약이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시바는 지난 6월 SK하이닉스 등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돌연 WD와 협상을 이어가는 등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 같은 줄다리기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 내년 3월까지 매각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고 채무 초과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장이 폐지되고, 채권단은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당장 도시바는 이달 말 상환해야 하는 채권이 6800억엔(약 7조원) 규모에 이른다. 최종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빚 상환 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 업계 전문가는 “SK하이닉스의 도시바메모리 투자 계약이 9부 능선을 넘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투자를 통해 성장성이 큰 낸드플래시 분야의 사업 및 기술적 측면에서 선제적으로 우위를 확보하는 등 중장기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협력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SK하이닉스는 D램 분야에선 삼성전자에 이은 2위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낸드플래시는 시장 참여 업체 가운데 기술과 매출이 가장 뒤처진다. 이번 투자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향후 기술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최종 계약을 맺기 전까지 성급하게 판단하면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 WD는 이날 국제중재재판소에 매각 일시정지 가처분신청을 또 내겠다고 발표했다. 가처분신청은 긴급을 요하는 사건에 대해 빠른 시간 안에 법원 결정을 구하는 제도다. 전날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SK하이닉스와 함께 연합에 참여한 애플이 핵심 사항에 대한 이견을 제기해 정식 계약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도 이날 발표 자료에 “내년 3월까지 계약이 완료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는 문구를 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최 회장은 당초 오는 2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연례 만찬 참석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조정해 일본에 먼저 들른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업계에선 최 회장의 일본 방문은 오전에 열린 SK하이닉스 이사회 직후라는 점에서 계약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