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처별로 난립한 연구관리 전문 기관을 소수로 재정비한다. 연구관리 전문 기관이 관료화·비대화하면서 '옥상옥'이 됐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다수 기관이 지나치게 많은 규정을 운영, 비효율이 심각한 상황이다. 연구자 행정 부담 가중, 사업관리 전문성 약화 등을 초래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9일 관가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말까지 연구관리 전문 기관의 연구개발(R&D) 사업 관리 현황을 조사하고 정비 방안을 수립한다. 수십개에 이르는 전문 기관을 정책 대상·기술 분야별 소수로 조정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R&D 행정 효율과 전문성을 높이려는 정책의 일환이다.
연구관리 전문 기관은 국가 R&D 시스템에서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 사이에 놓이는 중간 기구다. 정부 정책상 결정된 R&D 사업을 프로젝트(과제) 차원으로 관리, 집행한다. 현장 연구자는 전문 기관에서 과제를 따 연구를 수행하고, 기관 규정에 따리 관리·감독을 받는다.
문제는 각 부처가 R&D 사업을 경쟁하듯 수행하면서 전문 기관 수와 규모도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집계한 주요 기관만 18개에 이르다. 소규모 기관까지 합하면 수십개로 추산된다. 숫자는 정책 연구 문헌마다 다를 정도다.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만 각각 3~5개의 기관이 있다.
연구자가 여러 부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각기 다른 기관, 다른 규정에 따른 관리를 받아야 한다. 다부처, 다학제 융합 연구가 강조되면 이런 경향은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다보니 '연구를 하려다 행정 전문가가 될 처지'라는 자조 섞인 불평이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올해 국정감사 정책 자료집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 정책 자료는 “과학기술 주무 부처뿐만 아니라 관계 부처도 R&D 사업을 앞 다퉈 추진하면서 연구관리 전문 기관이 급증했다. 현재는 연구관리 전문 기관의 현황 파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부처별로 복수의 전문 기관을 둘 수 없도록 규정하고, 각 기관의 소관과 사업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연구관리 체계의 일관성과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연구 현장의 행정 관리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앞서 과기정통부는 흩어진 부처별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2개로 통합, 행정 비효율성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처별, 전문 기관별로 난립한 연구 관리 규정을 하나로 통합하는 '(가칭)연구개발특별법'도 마련한다.
과기정통부는 한발 더 나아가 규정 운용 기관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관 난립을 막지 못하면 또다시 자체 체계와 규정을 양산할 우려가 크다. 규정뿐만 아니라 기관도 재정비하겠다는 것은 기존보다 진전된 안이다. '소수로 재정비'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실제 통폐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연구관리 전문 기관의 재정비는 여러 부처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기관 차원에서는 존립 여부와 연계되기 때문에 자칫 기관 통폐합에만 재정비 초점이 맞춰지면 검토 단계부터 벽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과기정통부가 재정비 기준을 얼마나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마련하는지가 관건이다. 연구관리 법령 일원화 과정에서 전문 기관 관련 규정을 담는 방안도 거론된다.
과학계 관계자는 “전문 기관 난립은 연구 몰입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관리 전문성과 위상을 약화시켜 결국 전문 기관에도 독”이라면서도 “기관 재정비는 옳은 정책 방향이지만 통폐합 논의 이전에 어떤 기준, 기술 분야를 중점으로 정비할지 가치 논의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재 있는 전문 기관을 일률로 통폐합하거나 결론을 내놓고 구조 조정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특성별로 재정비를 검토하는 것”이라면서 “관리 비효율도 해결해야 하지만 핵심은 관리 분야별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처별 주요 연구관리 전문 기관>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