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교육은 혁신 기술을 개발할 인재를 양성하고, 이를 사회 변화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사람들이 변화된 체제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교육의 몫이다. 4차 산업혁명의 완성도 교육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은 4차 산업혁명 최전선에 서 있다. 해외에서는 기존 대학의 틀을 허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과감하게 전통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형태의 교육으로 인재 양성에 나섰다.
국내 대학에서도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인공지능(AI)·블록체인·3D프린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전공을 만들고, 전공 간 벽도 허물고 있다.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수업 형태도 강의실에서 교수가 지식을 일방 전달하는 수업 중심에서 온라인 강좌, 토론형 강좌로 바뀌고 있다.
◇AI·블록체인 전공 등장, 대학 내 연구소도 혁신
서강대는 2018학년도 1학기부터 정보통신대학원에 블록체인 전공을 신설한다. 블록체인은 모든 것이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안을 지키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핀테크 전공 학습 과정을 보강하고 재개편, 신설됐다.
경희대는 내년부터 현재 전자정보대학에 포함된 소프트웨어(SW)융합학과를 단과 대학으로 확대해 운영한다. AI 등 첨단 기술에 적용할 SW 개발 전공자 확대를 위해서다. 빅데이터, 미래 자동차, AI 등과 관련된 SW 교육을 한다.
국민대는 최근 국내 대학 최초로 4차 산업혁명을 위해 대학의 방향을 제시하고 학교 성과를 소개하는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국민대는 3D 프린터, 자율주행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주목받는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잇달아 내고 있다. 이를 학부 교육에 접목하기 위해 교양부터 전공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과목을 개설했다. '3D 프린팅 창의 메이커스'라는 이름의 교양과목을 통해 디자인 전공이 아닌 학생도 쉽게 3D 프린팅을 이용한 창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도록 했다.
동아리 활동 지원도 확대된다. 동아리는 학생 스스로 학습하고 새로운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학생 자율 마당이다. 국민대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생이 스스로 4차 산업혁명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국민대 태양광 자동차 동아리 KUST는 국내 대학 최초 태양광 자동차로 호주 국토 일대 횡단에 성공했다. 자작차 동아리 KORA는 미국에서 열린 세계 대학생 자작차 대회에서 2015년 4위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아시아권 대학 중 최고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자동차 전공 연합인 KAV-S팀은 대학생 자율주행 경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공의 벽 허물고 융합 시대로
고려대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 주제인 'ICBM+AI'를 공동 강의 형태로 진행하는 온라인공개강좌(MOOC)를 열었다. 이 강의는 산업공학과, 전기전자공학부, 컴퓨터학과 교수들이 함께 강의한다. 교수가 세부 전공에 따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동 강의함으로써 학문 간 장벽을 허물었다.
고려대는 지난해 지식 창조를 위한 학생 전용 공간인 파이빌(π-Ville)을 열었다. 창직, 창업, 문화예술, 공연,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 창출을 원하는 학생들은 스튜디오를 지원받는다. 이 공간은 학생들이 창의 지식을 구현하는 공간이다.
국민대 신입생은 인문·자연 계열과 관계없이 모두 SW 코딩 교육을 받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문·사회 계열 학생도 컴퓨터 사이언스에 기반을 둔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 최초로 각 단과대학 학장 및 대학본부 처장단 등 교무위원 대상으로 사물인터넷(IoT) 교육을 실시한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인재를 양성하는 교원들의 인식 변화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강대는 복수 전공의 제한을 없앴다. 융합형 교육을 위해 얼마든지 다양한 전공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이화여대는 온라인 강좌와의 차별화를 위해 오프라인 강좌를 학생 중심 토론형 강좌로 바꿨다.
변화를 위해 대학끼리도 머리를 맞댄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최근 고등교육미래위원회를 꾸렸다. 대교협이 미래 고등 교육 청사진을 만들고자 꾸린 협의체다. 미래학문, 미래교육, 고등교육재정, 자율화·특성화, 국제화 등 5개 분야별 미래 대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고민한다.
◇기존 틀에 머무르는 한계도
대학의 변화 시도에도 여전히 기존 틀을 깨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지적됐다.
대학 정원제 틀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학점도 대부분 상대평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나마 항의가 적은, 가장 무난한 형태의 교육만 이뤄진다.
최근 혁신학교로 주목받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교양 과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이를 온라인 강좌로 대체했다. 입학 이전부터 온라인 강좌로 수업을 이수한 학생은 2학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3년 만에 졸업할 수 있다.
국내에서 이러한 혁신은 정원제라는 문제 때문에 도입하기 어렵다. 정부가 프라임(PRIME)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원 조정에 나섰지만 서로 연관없어 보이는 학과를 단순히 합치는 데 그쳤다.
대학이 챙겨야 할 지표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장호성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대학이 구조 개혁 평가에 매달리느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할 수가 없다”면서 “정량 지표를 관리하느라 창의 교육 시스템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량적 평가나 규제에서 벗어나 유연성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학교 역할과 교습 방식 전반에 걸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문보경 산업정책부(세종)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