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연구개발(R&D) 과정의 실패에 책임을 묻는 것도 모자라 연구원 개인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다니요. 성과만 바라보는 R&D 행정의 단면입니다. 지극한 행정 편의 발상이에요.”
방위사업청이 연구원들에게 시험 비행을 하다 추락한 정찰용 무인기 배상 책임을 지운 것을 두고 연구 현장 안팎에서 공분이 일고 있다. 연구 현장의 도전 의욕을 꺾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황당해 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연구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판에 연구원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은 과학기술 발전에 역행하는,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방과학연구소(ADD) 무인기 추락 연구원 징계를 다시 심의해 주십시오'라는 청원 글은 이달 1일 1만9786명의 참여자를 모으며 마감됐다.

청원 내용은 방사청이 ADD 비행제어팀 연구원에게 '차세대 군단급 정찰용 무인기(UAV-Ⅱ) 시제 1호기'의 추락 책임을 물어 부당하게 중징계를 내리고 거액의 손해 배상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UAV-Ⅱ는 지난해 7월 충남 논산 육군항공학교에서 초도 비행을 하다가 추락했다. 이륙 후 동체가 왼쪽으로 쏠리면서 균형을 잃었다. 방사청은 연구원의 실수가 사고 원인인 것으로 보고 “연구원이 측정 장비의 좌표 신호 체계를 반대로 입력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ADD에 소속 연구원 5명에 대한 67억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청원인은 “이들(비행제어팀 연구원)이 중징계를 받고 물러난다면 연구원들이 과감한 연구를 할 수 있겠느냐”면서 “수많은 R&D가 안전한 실내 실험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국공공연구노조는 방사청은 물론 ADD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명호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은 “관리감독 책임이 ADD에 있는 가운데 방사청이 실패의 책임을 연구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ADD 역시 면밀한 사고 조사와 원인 규명 없이 연구원이 책임을 지도록 방관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방사청은 기존 결정 사항을 재검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ADD 관계자는 “ADD 요청으로 방사청이 관련 내용을 재검정하고 있다”면서 “다만 언제쯤 결론이 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