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혁신 생태계 조성에 번번이 재뿌리는 은행연합회

금융관련 협회 맏형격인 은행연합회가 4차 금융혁명 생태계 조성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초대형 IB인가사업은 물론 블록체인, 외화송금 등 주요 현안마다 독자 행태를 고수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금융산업 혁신 생태계 조성에 번번이 재뿌리는 은행연합회
금융산업 혁신 생태계 조성에 번번이 재뿌리는 은행연합회

회원사인 은행권 조차 은행련 조직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초대형 투자은행(IB)의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두고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은행련은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금융 당국이 진행 중인 초대형 IB에 대한 발행 어음 업무 인가는 부적절하다”며 사실상 사업 자체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행 어음 업무는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금융위는 오는 13일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NH투자·삼성·KB증권 등 자기자본 등 요건을 충족한 증권사에 대한 초대형IB 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초대형IB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인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업무 인가 통과 여부도 이날 결정된다.

금융투자업계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초대형IB 도입으로 모험자본이 25조원 가량 공급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초대형IB의 조속한 인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은행련 성명을 반박했다.

금융투자업계와 중소기업계도 은행연합회의 이런 태도가 정부의 모험자본 육성 의지에 역행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간 자금조달이 시급한 중소기업에 대한 기업금융을 꺼리고 손쉬운 가계대출 영업에만 집중하던 은행권이 인가 보류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도 같은 시각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7월 취임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도 은행권의 영업 관행을 질타한 바 있다.

금융산업 혁신 생태계 조성에 번번이 재뿌리는 은행연합회

앞서 최 위원장은 “과거 사무관 시절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등은 기업대출 위주였고, 국민은행만 특수은행으로 가계대출 위주로 영업했다”면서 “신한은행의 기업대출은 74.2%, 하나은행도 72.4%였는데 현재 40% 수준으로 줄었다. 모든 은행이 국민은행처럼 됐다”고 질타했다.

이달 초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에 금융위가 초대형IB에 대한 신규업무 인가와 자본규제 정비 등을 통해 벤처투자 등 기업금융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것도 같은 이유다.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창업·투자 선순환 체계 구축을 지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전자신문 주최로 열린 제6회 스마트금융콘퍼런스에서 밝힌 “1960~70년대 은행이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에 나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지금처럼 만들었다면 이제는 모험자본 공급자인 창업투자회사와 증권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발행어음 도입으로 인해 예상되는 추가 자금조달 금액은 약 49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최소 24조6000억원은 중소·벤처기업 관련 자산에 투자하도록 규정돼 있다. 은행권이 우려하는 기업 대출은 운용 자산의 일부일 뿐 대부분은 주식 또는 회사채 등 발행물 투자에 쓰인다.

금융투자협회는 초대형 IB 인가로 탄생할 5개 증권사가 제조업, 건설, 서비스업에 투자하면 최소 21만개에서 최대 43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황영기 회장도 “금융의 본질은 결국 돈의 융통에 있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금융이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초대형 IB 인가를 앞둔 증권사 뿐만 아니라 중소형 증권사까지도 내·외부에 벤처투자 조직을 확충하고 있다. 단순 기업대출 만으로는 은행 영업력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4차 금융혁명의 통로로 불리는 블록체인 인증사업과 관련 두 협회간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금투협은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공동 인증 서비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수행 사업자도 핀테크 기업에게 고루 기회가 갈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등 생태계 환경 조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반면 은행연합회는 블록체인 인증사업이 수개월째 표류하다가 최근에서야 본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자 입찰 과정에서도 중소형 SI기업을 배제하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핀테크 기반 외화송금 사업도 은행련이 금융당국에 핀테크 기업 단독으로 사업을 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의 폐쇄적인 조직 속성이 금융 산업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며 “4차 금융산업과 연관된 분야를 전문조직으로 이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