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AI 날개 단 의료기기, 규제·기술 선도한다

[이슈분석]AI 날개 단 의료기기, 규제·기술 선도한다

전통 하드웨어(HW) 중심 의료기기가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소프트웨어(SW) 기반으로 급변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가 디지털화되면서 각종 의료 정보를 진단·치료 영역과 SW 접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활용 가능성이 엿보이지만 신뢰성과 안전성은 관건이다. 환자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요구된다.

정부는 기존의 의료기기 인허가 제도에 포함되지 못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적용 의료기기의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연구개발(R&D)을 의료 현장에 적용할 기반을 마련했다. 정부와 기업의 발 빠른 대응으로 새 의료기기의 패러다임을 주도할 역량을 확보한다.

◇진단·치료는 '의료기기', 건강관리는 '비의료기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의료용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은 IBM 왓슨으로 대표되는 빅데이터, AI 기반의 의료용 SW 정의와 의료기기 분류, 인허가 과정 등을 담았다. 지난해 12월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컴퓨팅 적용 의료기기 정의 및 관리 범위(안)'을 바탕으로 세분화 작업을 거친 결과다.

가이드라인(안)과 비교해 큰 틀에서 변화는 없다.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SW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환자 질병 유무 및 상태 등을 자동으로 진단, 예측, 치료하는 제품이다. 또 의료영상기기, 신호 획득 시스템 등으로 측정된 환자 생체 패턴이나 신호를 분석해 진단·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제품도 포함된다. 폐 컴퓨터단층촬영(CT) 필름을 분석해서 폐암 발병 유무 또는 진행 상태를 자동으로 진단하거나 심전도를 분석해서 부정맥을 진단·예측하는 SW를 대표로 들 수 있다.

비의료 기기로 분류되는 제품은 △보험청구 자료 수집·처리 등 행정 사무 지원 △일상생활에서 건강 관리를 위한 제품 △대학, 연구소에서 교육·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품 △의료인이 논문·처방 목록 등 정보를 쉽게 찾도록 지원하는 제품이다.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거나 약물 부작용 정보를 주는 SW가 대표 제품이다. 세계 의학 논문 등을 분석해서 암 환자 치료법을 제시하는 'IBM 왓슨 온콜로지'는 정보 검색에 해당, 비의료 기기로 분류된다.

◇세계 최초 가이드라인, 美도 이제 시작

빅데이터나 AI를 적용한 의료기기를 정의하고 허가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의료 서비스와 정보통신기술(ICT), 의료 빅데이터 축적량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병원 IBM 왓슨 도입 비율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데다 병원·연구소별로 빅데이터와 AI 적용 시도가 활발하다. 4차 산업혁명 육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시장 선제 점유를 위해 민첩하게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보건의료 영역 기술, 산업, 규제가 가장 앞선 미국도 아직 관련 가이드라인이 없다. 다만 올해 7월 '디지털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액션 플랜'을 발표, 의료용 SW 인허가를 간소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액션 플랜에 따르면 내년 1분기까지 SW 탑재 의료기기 정의,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적절한 자격 요건을 갖춘 회사에 대해 검증된 의료용 SW가 현장에 신속히 적용되도록 사전 승인을 허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제 막 착수한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시장 분석, 용어 정의, 인허가, 관리 방안까지 체계화해 마련했다.

강영규 식약처 첨단의료기기과 연구관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정부 지원 방안을 제외하고 현장 적용을 위한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는 못했다”면서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 AI 적용 의료기기 인허가 가이드라인 마련은 국민 보건과 산업 육성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R&D에 머물던 의료 SW 기술, 상업화 신호탄 마련

의료기기가 환자에게 적용되기 위해 의료기기법에 따라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환자 의료영상정보, 진료 기록 등을 분석해 질병을 진단·치료·예방하는 의료용 SW R&D는 활발하다. 그런데 의료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허가'가 필수다.

가이드라인은 병원, 기업이 합심해서 개발한 결과물이 임상에 바로 적용할 근거를 보장한다. 현재 연세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국내 대형 병원은 뷰노, 루닛 등 헬스케어 기업과 공동 또는 자체로 AI 기반 의료용 SW를 개발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의료 현장에 적용될 전망이다.

의료기기 허가는 글로벌 시장 진출과 기업 내부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의료 현장에서 의사가 아닌 SW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 요소가 크다. 정부가 유효성 검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 허가까지 내려 준다면 신뢰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 국가별로 관련 가이드라인, 인허가 규정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기업·기술 검증을 선도한다면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된다.

의료기기 허가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의료기관이 허가 받은 의료용 SW를 활용해 환자 건강을 도모하고, 기업은 정부로부터 사용에 따른 수익을 받는다. 추가 수익은 기술 개발, 해외 진출에 재투자된다.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도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기업 93%가 연매출 50억원이 채 안 되는 영세 기업이다. HW에서 벗어나 인프라 투자가 크지 않은 빅데이터, AI 등 기술을 축적해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김현준 뷰노코리아 이사는 “세계 최초로 제시한 이번 가이드라인은 의료용 SW 기업에는 R&D와 상업화 방향성을 제시하는 한편 ICT, 바이오 기업도 시장 진출 가능성을 열어 주는 의미 있는 사례”라면서 “실제 인허가를 받으면 제3국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