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과학계 최고 이벤트인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1901년 첫 제정 이래 매년 같은 날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발명가, 최고 권위 과학상 제정자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발명품이 무기로 활용되는 것에 통탄했던 그는 1895년 유언을 남겨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유산을 나눠주도록 한다.
이 유산이 오늘날의 노벨상이다. 노벨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 3100만 크로네를 기부했다. 현재 가치로는 27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왕립과학아카데미는 기금으로 노벨재단을 설립, 이자를 상금으로 삼아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하고 있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5개 분야로 출발했다. 경제학상은 1969년 신설됐다.
노벨상에 '평화'가 포함된 건 노벨의 생애와 관련이 깊다. 노벨은 스톡홀름에서 가난한 발명가의 아들로 태어난다.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폭발력이 좋지만 안정된 형태로 만들기 어려웠는데, 이를 안전하고 사용하기 쉽게 만들었다. 그리스어로 '힘'을 뜻하는 다이너마이트로 명명했다. 채광, 건설 작업에 쓰기 좋은 형태로 개량을 거듭했다.
노벨은 이 발명품으로 일약 대부호가 됐다. 노벨의 발명과 특허로 가문 자체가 회생, 유럽 최고의 부자 가문이 됐다. 하지만 만년에 들어서는 슬픔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 이용, 많은 사람이 죽었다. 노벨은 평화 운동을 후원하고 전쟁을 반대했지만 다이너마이트는 이미 현대전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노벨 평화상에는 마지막까지 평화를 갈구한 노벨의 뜻이 담겼다.
지금까지 노벨평화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단체는 국제적십자위원회다. 1901년 발기인 장 앙리 뒤낭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래 총 4회 수상했다. 전쟁 및 재해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박애 정신을 실천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동아시아 민주화, 남북 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이 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의 백미는 과학상이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각 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인정받는다. 노벨상은 인류에 기여한 '위대한 발견'에 주어진다. 단순히 좋은 물건을 만들거나 발명했다고 해서 받을 수 없다.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원리를 발견, 정립해야 한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실패를 딛고 꾸준한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가 빛을 보는 경우가 많다.
율리엔 지에라스 노벨 생리·의학상 심사위원은 “모든 노벨상 수상자의 공통점이라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점”이라면서 “반대로 상을 받지 못했다면 더 알아보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의 노벨과학상 추세는 '공동 수상'이다. 특정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과학자가 연구에 몰두하거나, 공동·협력 연구하는 사례가 많다. 과학이 그만큼 복합·융합화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노벨상도 물리, 생리·의학, 화학 3개 분야에서 공동 수상자가 나왔다. 문학, 경제, 평화를 제외한 과학상 전 분야다.
용액 내 생체분자를 고화질로 영상화할 수 있는 '저온전자 현미경 관찰법'을 개발한 공로로 자크 뒤보셰, 요아힘 프랑크, 리처드 헨더슨이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영,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바시는 유전자가 생체 리듬에 작용하는 역할을 규명한 '시간생체학'을 발전시켰다.
물리학상은 1세기 전 아인슈타인이 주창한 '중력파' 존재를 처음 확인한 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라이고) 연구진 3인에게 돌아갔다.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킵 손이 공동 수상했다. 중력파는 이론과 간접 증거가 제시됐지만 그 동안 직접 관찰한 적이 없었다. 세계 과학자 공동 연구로 지난해 2월 직접 측정에 성공했다.
중력파는 우주에서 블랙홀이 생성되거나 별이 폭발할 때 중력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동이다. 중력으로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중력파 에너지가 방출된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이를 예측했다. 이번 발견은 우주 탄생을 이해하는 데 큰 구멍을 메워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벨상위원회는 LIGO 연구진 성과를 “세계를 뒤흔든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받을 상금은 900만 크로나(약 12억7000만원)다. 종전 800만 크로나(약 11억3000만원)보다 100만크로나(약 1억4000만원) 인상됐다. 노벨재단은 기금의 장기적 운용에 위기가 올 수 있다며 2001년부터 1000만크로나이던 상금을 2012년 800만크로나로 깎았다가 이번에 다시 인상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