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단어다. 1858년 4월 10일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에 '빅벤'이라는 대형 시계탑이 설치되기 이전까지 영국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휴식을 취했다.
기준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지역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나름의 때를 계산, 생활한 것이다. 그러나 빅벤을 통해 시간의 기준이 정해지면서 얼마 뒤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가 그리니치 표준시를 중심으로 하나의 기준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표준은 이처럼 인류의 생활 양식마저 바꾸는 힘이 있었다.
현재진행형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표준은 사람과 사물, 기기 간 시스템을 연결하고 산업과 기술 간 융합을 통한 혁신을 이루는 핵심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다양한 산업과 지능정보 기술이 융합된 신산업 생태계에서는 기존의 산업별로 존재하던 개별 표준뿐만 아니라 초지능·초연결을 지향하는 융합을 위한 시스템 및 인터페이스(커넥티드 시스템) 중심의 표준 정립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인프라 기술인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일반 대중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세계 최초의 5G 시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는 우리 기술을 3GPP,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국제기구에 표준(안)으로 제안하는 등 기술 주도권 선점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5G 표준은 세계인이 함께 누리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스마트의료 등 지능정보 기술 서비스의 출현을 가속화하고, 산업 간 연계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촉매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선도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도 표준은 필수 요소다. 현재 스마트시티 사업은 고양(환경), 부산(교통), 대구(헬스케어)에서 시범 진행이 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다양한 이종 산업, 서비스가 융·복합되는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시티 구축을 위해서는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 데이터모델 연동 등의 표준에 근거한 긴밀한 융합은 필수다.
세계에서도 아직 초기 단계인 스마트시티 관련 표준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 표준을 만들고 대규모 실증 사업을 통해 상품성을 갖춘 스마트시티를 만들어 나간다면 세계 시장 진출 및 관련 산업 전반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표준이란 거대한 힘이 있다. 어찌 보면 그리 별스러울 것도 없는 시계탑 하나가 시간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세상을 가져왔듯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역시 표준을 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지금은 기존의 공식 표준화 기구뿐만 아니라 포럼, 컨소시엄 등 시장 중심의 사실 표준화 기구, 기업 간 표준 선점을 위한 경쟁 양상이 '표준 전쟁'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제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공식 표준화 기구 내에서 대표성을 더욱 높이고, 우리 기업이 주도하는 사실 표준화 활동에 대한 공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 표준화 전문가가 글로벌 무대에서 적극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체계화한 글로벌 표준화의 지속 지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박재문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kccpark@t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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