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스타트업들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되는 꿈을 포기하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7일 보도했다.
이들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은 언젠가는 대기업들을 누르고 우뚝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접고 있으며 중국 IT업계 거인인 알리바바와 텐센트 그늘에서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두둑한 호주머니를 이용해 스타트업을 삼키고 진입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중국 자전거 공유업계가 처한 상황이 이들의 막강한 위력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최근 수개월 동안 자전거 공유업계에서는 양대 기업인 오포와 모바이크 합병설이 무성했었다. 오포는 알리바바 그룹의 금융자회사인 앤트 파이낸셜 지원을 받고 있고 모바이크는 텐센트가 최대 주주로 있는 회사다.
오포와 모바이크는 2016년초부터 각각 10억달러가 넘은 자금을 조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도시들에 수백만대의 노란색(오포)과 오렌지색(모바이크)의 공용 자전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용료는 최저 7센트까지 떨어졌고 때로는 무료로 자전거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중반께 월 수만명 수준이던 두 회사의 서비스 이용자는 올해 10월에는 각각 월 4000만명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몇몇 군소 경쟁자들이 지난 몇 달간 낙오했고 자전거 공유라는 사업모델 성공을 입증해야 하는 두 회사의 부담은 한층 가중됐다.
일부 투자자들은 오포와 모바이크가 자금을 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통합설에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지만 양사는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차량 공유업계에서 이뤄진 통합을 좋은 선례라고 주장한다. 텐센트의 지원을 받는 디디가 1차로 알리바바가 뒷받침하는 경쟁사 콰이디와 합친 뒤 우버 차이나를 인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며칠 전 알리바바의 앤트 파이낸셜이 신생 자전거 공유업체 헬로바이크에 20억위안(약 3300억원)을 출자하면서 통합은 간단치 않은 문제가 됐다.
알리바바는 앤트 파이낸셜의 출자가 자전거 공유업계의 건전한 성장을 고취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숙적인 텐센트는 이에 대해 논평을 피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핵심 사업에 머물지 않고 다방면에서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두 회사는 대형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면 음식 배달 앱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고 유망한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에도 돈을 대주고 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중국 모바일 결제시장에서 합계 94%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회사가 자전거 공유업계에서 일종의 대리전을 벌이는 것도 바로 모바일 결제 사업에 걸린 이해 때문이다.
텐센트는 차량 공유업계를 무대로 알리바바와 대리전을 벌이기까지는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텐센트가 지원하는 디디가 경쟁자들을 속속 먹어치우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전거 공유업계의 대리전에서는 일단 알리바바가 유리한 국면이다. 알리바바 측에서 자전거 공유 서비스 이용자들이 내야 하는 보증금을 면제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알리페이의 세서미 신용(Sesame Credit) 서비스가 소비자들의 쇼핑과 기타 온라인 활동을 평가해 매기는 신용 평점이 그것이다. 이 신용 평점이 높은 오포 이용자는 100~299위안(약 1만6500~4만9300원)가량인 보증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앤트 파이낸셜이 헬로바이크에 투자한 만큼 세서미 신용 서비스는 더 많은 가입자를 끌어들일 전망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사례에서 보듯 중국 스타트업들은 점차 장기판의 졸이라는 역할에 익숙해지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스타트업들의 사업이 순항한다면 언젠가 알리바바 혹은 텐센트로부터 출자를 발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경쟁 스타트업들이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중국 IT업계에 자리 잡은 지배적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