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 보지 않은 길 앞에 섰다. 창업이 아니라 미래 세상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다. 여정은 짧지만 할 일은 태산이다.
장병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장을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KT빌딩 13층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스타트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국내 정보기술(IT)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스타트업 기업인들의 우상”이라면서 “풍부한 실전 경험과 혁신 소통 리더십으로 새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정책 방향과 국가 전략을 구현할 적임자”라며 위원장에 위촉했다. 그는 네 번이나 창업해서 모두 대박을 터뜨렸다. 장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 제안도 받았지만 주식 백지신탁 문제로 거절했고, 그런 절차가 필요 없는 위원장직을 맡았다.
'업무 중압감으로 표정이 어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를 만났지만 의외로 표정이 밝았으며,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장 위원장은 “모든 걸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겠다”면서 “민·관 팀플레이로 관련 부처와 긴밀히 협력해서 4차 산업혁명의 국가 전략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씩 성과를 내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중기부) 장관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주식 백지신탁 때문인가.
▲그렇다. 주식 백지신탁은 공익과 사익의 이해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제도다. 공직에 나가려면 보유 주식을 팔아야 한다. 나를 믿고 함께 일하고 있는 회사 구성원들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장관 1~2년 재임 후 다시 원래 자리로 갈 수가 없다. 지금은 자수성가해서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벤처기업인의 공직 진출은 불가능하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외국에는 보관신탁제도가 있다. 우리도 주식 백지신탁제를 개정해야 한다.
-위원장으로서 위원회 운영 방침이 궁금하다.
▲모든 걸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겠다. 민·관 팀플레이로 관련 부처와 긴밀히 협력,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국가 산업 지도를 그려서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하나씩 성과를 내보이겠다. 큰 꿈을 꿔야 작은 일도 성공한다. 국민이 성과를 체감하고 지지해야 동력을 얻어서 다른 분야로 업무를 확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과를 내는 게 시급한 일이다.
-위원회는 정책 심의와 조정만 하는가.
▲그렇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국가 종합 전략, 부처별 실행 계획, 지능화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 등을 심의·조정한다. 지난달 30일 제2차 회의를 개최해서 21개 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혁신 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권한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측면이 있다. 위원회는 예산권이나 집행권이 없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겠다.
-위원회의 정기 회의는 언제 하는가.
▲전체 정기 회의는 분기 1회씩이다. 올해는 1차와 2차 회의를 했다. 이달 안에 3차 회의를 연다. 올해는 매달 한 번 회의를 한 셈이다. 현안이 있으면 수시로 회의를 한다. 분과위는 자체 회의를 한다.
-부처 간 이견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지원단이 잘 조율하고 있어서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다. 그런 일이 있으면 이성과 합리에 맞게 대화하면 다 이해하고 수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합리타당하게 조정하겠다.
-부처별 내년도 4차 산업혁명 예산은 다 반영했는가.
▲2018년도 예산은 각 부처에서 편성했다.
-부처별 4차 산업혁명 추진 성과는 어디서 평가하는가.
▲어려운 일이다. 큰 틀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은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국민이 4차 산업혁명 추진의 성과를 평가한다고 본다.
-대통령 4차 산업혁명 업무 보고는 정기로 하는가.
▲위원회 간사가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다. 위원회가 정기 보고는 하지 않지만 모든 건 간사가 챙긴다. 지원단장과도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업무를 공유하고 있다.
-위원장 임기가 1년이다. 연임도 가능한가.
▲임기가 1년이어서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장기 구상이나 미래 예측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나는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연임은 임명권자의 뜻에 달렸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 같은 첨단 분야는 관련법이 없다.
▲한국은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첨단 분야 관련법이 없어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에 제약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서 법이 제한하지 않으면 가능하도록 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대통령도 “새로운 산업에서 규제가 더 문제다. 법에 없으면 하면 되는데 오히려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위원회도 첨단 분야와 관련된 대안을 마련할 생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은.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현명한 시행착오다. 이 경우 회복 탄력성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는 기술이나 지식 축적이 필수였다. 배우는 시스템은 도제식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복사 비용이 안 든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다. 프랑스 에콜42 같은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이 학교는 창의성, 협력, 기술성, 성실성 등에서 전문 능력을 기르는 게 교육 목표다. 우리도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큰 담론이어서 정답은 없다고 본다. 다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교육을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과거는 대학 졸업 후 배운 지식으로 몇십년 살았다. 지금은 평생교육 시대다. 시대에 맞게 교육도 변해야 한다.
-개선해야 할 4차 산업혁명 관련 제도 정비는 어떤 것이 있는가.
▲현재는 주무 부처에서 제도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위원회도 이 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룰 방침이다. 위원회가 이 일을 주도하기보다 주무 부처에서 하는 일을 지원하고, 이견이 있으면 중간에서 사회 합의를 거쳐 조정할 계획이다. 헬스케어특위는 보건복지부와 협업하면서 제도를 정비할 방침이다.
-혁신 해커톤으로 다룰 주제는 무엇인가.
▲해커톤으로 모든 걸 다룰 수는 없다. 해커톤은 4~5주 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1박2일 동안의 끝장 토론이 백미(白眉)다. 4차 산업혁명은 사안에 따라 부처 간 협업, 해커톤, 사회 합의 과정 등 논의의 틀이 다양하다. 해커톤은 여러 포맷 가운데 하나다.
-위원회가 논의한 사항은 정책에 어떻게 반영하는가.
▲두 가지가 있다. 주무 부처가 의지를 내서 추진하는 정책은 반영이 쉽다. 해당 부처가 정책에 반영하면 된다. 다만 소관 부처가 없는 업무는 위원회 내부 논의를 거쳐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금 선순환한다고 보는가.
▲선순환 구조가 시작됐다. 보통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기업이 엔젤투자자로 나서는 것을 선순환이라고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후배 창업자를 위해 투자하는 이른바 페이 포워드라는 말이 있다. 받은 이익을 후배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다. 우리도 시작했다. 앞으로 지속 발전시켜야 한다. 아직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미흡하다.
-중국 추격이 거세다.
▲중국 추격이 거센 정도가 아니라 우리보다 앞선 게 많다. 2년 전 외부 강연에서 “중소기업은 중국에서 창업하면 안 된다. 스타트업이 중국 가서 성공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나는 당시 중국보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만약 중국에 가려면 절대 베낄 수 없는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창업에 성공하겠는가.
▲창업과 관련해서 구성원과 스타트업 실패는 구분해야 한다. 회사는 망해도 그 구성원을 실패자로 만들면 안 된다. 실패에서 얻은 경험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모두 성공을 꿈꾸지만 실제 성공률은 극히 낮다. 과거 연대보증인 제도를 개선하자고 한 것도 기업은 망해도 구성원은 성공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청년들에게 당부할 말은.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공한다는 게 안정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에 취업하면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회는 다원화·다가치 형태를 취한다.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다할 진(盡)'자를 좋아한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취미는 별다른 게 없다. 그저 일하는 게 취미다. 이달 안에 '장병규의 스타트업 입문'이란 책을 펴내기 위해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 가족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장 위원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같은 대학원에서 전산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인터넷 기업 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했으며, 2005년 검색엔진 업체 첫눈을 창업했다. 2007년 게임업체 블루홀과 스타트업 투자 전문 회사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창업했다. 창업에 모두 성공,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현재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