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년 전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부족한 자본과 기술 개발 여력으로 인해 세계 인지도가 낮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가 국내 기업에서 개발됐다. 다른 제약업체는 당뇨 신약을 개발,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을 수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모두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한 결과 세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덕분에 많은 제약 회사가 연구 인원을 확대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기여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료에 따르면 제약업계의 고용 인원은 2011년 7만4477명에서 2016년 9만4929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R&D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제약업계를 제외한 많은 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꽤 오랫동안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 실업 문제 역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 타개를 위해 지난 10월 18일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눈에 띄는 것은 R&D 주력 제조업의 고도화와 4차 산업혁명 선도 신산업 지원 등을 로드맵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정부가 R&D 지원을 일자리 창출과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을 정책으로 보여 줬다.
R&D는 기업 성장의 추진 동력이다. 여러 인원이 직접 개입해야 이뤄지는 R&D는 기업의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 성공한 R&D는 후속 R&D를 불러와 고용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또 개발 결과의 사업화는 생산 및 영업·서비스 등 타 분야 성장으로 이어져 또 다른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R&D 투자는 고용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중요한 연결 고리다.
R&D 투자에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R&D 사업 지원 시 고용 창출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우선 고용 창출에 적합한 과제의 기획·도출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도 대부분의 지원 과제는 고용 효과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다. 기획 시 분야마다 신규 고용,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건과 관련 규정을 더 추가한다면 더 많은 신규 인력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로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과제의 중점 지원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R&D와 일자리 확대의 선순환 구조는 기업이 수행하는 R&D 과제가 사업화까지 이어졌을 때 더욱 견고해진다.
이 때문에 R&D 지원 기관이 수행 기관의 과제를 평가할 때 사업화 지표를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 물론 모든 R&D 지원 과제가 사업화와 상품화로 이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사업화를 위해 더 나은 노력을 끌어낼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11월 17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주관한 '산업 기술 R&D 일자리 토론회'에서는 12개 고용 창출 우수 기업이 2016년 신규 채용 때 58.3%를 R&D 분야에서 창출한 사례가 소개됐다. 산업 현장에서 직접 R&D와 일자리 간 긴밀한 관계를 확인했다.
일자리 창출의 지름길은 R&D 역량 강화다. 우리나라가 양산되는 신기술의 파고 속에서 기술력 확보 및 세계 시장 주도를 위해서는 R&D 투자와 함께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된 성과 창출과 기업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 학계, 연구계 등의 목소리를 담은 R&D 지원 확대를 바탕으로 정부가 일자리 로드맵을 성공리에 이끌어 갈 수 있길 바란다.
성시헌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seong@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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