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 중국 인력 유출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인력 채용을 대폭 늘려 주목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문 경력 공채를 100여명 가까이 뽑았다. SK이노베이션의 전체 배터리 사업 인원 약 350명 중 3분의 1에 가까운 규모다.
SK이노베이션이 국내 배터리 인재 블랙홀이 된 것은 업계 후발주자라서 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대표 인재 사업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 외에도 사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술과 이를 상용화하는 지식이 수반돼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 초기 필요한 인력 상당수를 LG화학과 삼성SDI, 국내 중견기업에서 확보했다.
배터리를 차세대 먹거리로 선정하고 집중 투자를 진행하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서산 배터리 공장에 제2공장동 건설, 배터리 설비 4~6호기 증설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달 유럽 헝가리 배터리 공장과 서산 7호기 증설, 증평 소재공장 분리막 12~13호기 신규 증설에 1조원 이상 투자했다. 국내외 증설 계획에 따라 내년과 내후년에도 올해보다 더욱 많은 경력직 채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문 인력의 중국 유출로 고심해왔다. 중국은 전기차·배터리 굴기(堀起)를 본격화하면서 국내 주요 업체에 소속된 연구개발과 엔지니어 인력 스카우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연봉 외에 성과급, 자동차 구입 보조금, 숙소 지원 등 파격적 조건을 내세워 한국 배터리 인력 모집 공고를 냈다. 중국 창청자동차는 배터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예 한국에 연구소를 차리고 한국 연구개발 인력을 영입하기도 했다.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 중 하나인 ATL의 경우 박사급 연구인력 100명 중 절반가량이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계는 핵심 인력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시장 개화 단계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다른 사업 부문에 비해서 박한 처우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 소속 구성원에 대한 처우는 국내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 3~4배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중국 업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해외 기술 유출이나 토사구팽에 대한 부담감 등 정성적 요소를 고려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을 택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나 정보전자소재 사업 경력 공채에는 지원자가 몰려 높게는 10대 1에 육박하는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업계 현직 구성원의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블라인드에는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 사실을 알리며 정보를 교류하고 축하를 건네는 글도 다수 게재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최근 SK이노베이션으로 경력 이직한 다수 직원은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로 처우 개선과 함께 회사와 개인의 성장 가능성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업문화를 꼽았다”면서 “공격적인 투자와 인재를 육성하는 기업문화가 국내 배터리 업계 핵심 인력 유출을 막는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국내 업체 간 인력 빼가기 경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를 의식해 모든 인력은 중국 업체 같은 핀포인트 스카우트 방식이 아닌 공개채용 형태로 선발한다. SK이노베이션 채용 사이트에는 연중 쉼 없이 배터리 전문인력 채용 공고가 게재된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