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가 대규모 감사에 기관장 사퇴 압박까지 겹치며 우울한 연말을 맞았다. 정부 감사가 지난 정권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핵심 과제이던 통합 연구회와 융합 연구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차관과 1급 공무원이 나서서 직할 기관장 사퇴를 종용했다.

25일 관가와 과학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실시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대상 감사에서 처분 30여명과 견책 이상 징계 8명을 요구했다. NST 조직 규모가 100명 조금 넘는 점을 감안하면 고강도 징계 요구다.
과기정통부는 NST를 3개월 이상 감사했다. 2014년 현 통합 연구회 출범 이후 첫 감사인 점을 감안해도 전례 없는 장기·고강도 감사였다. 감사는 NST 융합연구본부와 경영본부에 집중됐다. 융합연구단 선정·운용은 물론 통합 연구회 경영 전반을 살폈다.
두 본부는 연구회 통합과 융합 연구 활성화의 핵심 조직이다. 전 정부 출연연 정책의 핵심이었다는 점에서 감사가 집중됐다. 연구회 경영 관계자는 물론 융합연구단 선정·기획에 참여한 이들까지 문책을 당했다. 사업 기획과 관리 과정에서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다.
지난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에게는 사퇴 압박이 이어졌다. 과기정통부 차관급·1급 공무원이 원자력의학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연구재단에 기관장 사퇴를 종용했다. 비공식 채널에서 사퇴 압력이 들어간 직할·출연기관도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는 새 정부의 정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재신임'을 묻는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기관 핵심 사업 난항, 기관 개혁 필요성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해당 기관장의 임기가 많이 남았고,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의 비위나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어 논란은 더 컸다.
한 출연기관 관계자는 “직할기관 사퇴 압박을 일률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출연연 기관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사실상 '월권'”이라면서 “과학계 출연연 기관은 정치 성향이 옅은데도 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는 건 지나친 처사”라고 토로했다.
이과 관련,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출연연) 기관장의 임기가 남았는데도 강제적으로 그만두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기관장의 경영역량 등은 다시 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기관장 교체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기관장 사퇴 종용에 관여한 과기정통부 인사는 하나 같이 '메신저(전달자)' 역할을 강조했다. 자신이 '윗선'의 뜻을 전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 초반이어서 일상적 감사가 확대 해석되는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현 정부와 일부 기관장의 '불편한 동거'가 과기계 전반 파열음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사퇴를 거부한 기관장을 정책에서 배제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예정된 정책 발표를 돌연 취소하거나 회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참석시키는 식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
공동취재 성현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