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기는 쟁점 법안 처리…전안법·보편요금제 등 논란 계속

국회가 지난 22일 마지막 본회의 개최에 실패하면서 정부 입법 작업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올 연말 유예 시한이 만료되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수백만 소상공인을 범법자로 만들 시한폭탄이 됐다. 각 부처 쟁점 법안 처리도 줄줄이 해를 넘길 전망이다.

25일 소상공인 등 관련 업계는 국회 본회의 무산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안법 개정안이 가까스로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개헌 특위를 둘러싼 여야 간 당쟁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주 '원포인트'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면 소상공인과 해외 구매대행 업계는 잠재적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 소상공인은 “전안법 개정안 처리 불발로 새해 첫 날 범법자로 전락하게 됐다”면서 “국회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700만 소상공인을 볼모로 잡았다”고 토로했다. 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처리를 기대해야할 만큼 절실하다”며 “국회가 빠른 시일 내 본회의를 재개해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안법 개정과 연계한 제품안전기본법 일부 개정,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 등 현안도 산적해 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은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국가혁신클러스터 지정과 육성 등을 위해 조속한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통신비 인하 국정과제인 '보편요금제' 논쟁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사 보편요금제 출시를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연내 발의에 실패했다. 이통사와 정부·시민단체가 도입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진행 중이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가 논쟁을 받아 안았지만, 결론을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시장 진입을 기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는 법률(안)도 입법예고했지만, 통신비 논쟁에 발목 잡혀 역시 발의되지 못했다. 법률안 통과 여부는 제4 이동통신 탄생에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경제 활성화 법으로 주목받는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법도 연내 처리가 무산됐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지역별로 특화산업을 선정해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야는 규제프리존특별법 취지에 공감해 합의점 마련에 노력했지만 세부 쟁점에서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해 넘기는 쟁점 법안 처리…전안법·보편요금제 등 논란 계속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서비스 기업에 금융·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창업·해외진출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이 통과하면 서비스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논란 등으로 올해도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금융 핵심 쟁점 법안인 은산분리 법안 처리도 무산됐다. 이번 정부에서는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前) 정부는 케이뱅크(K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 인가를 해주면서 은산분리 규정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은산분리는 현행 은행법에 따라 산업자본은 은행의 지분 1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고 4% 초과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말한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이 같은 규제 완화에 맞춰 증자 등 여러 대비책을 세워놓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은산분리 원칙 유지' 입장으로 바뀌었다. 금융감독 '적폐 관행'을 개혁하겠다며 구성한 민간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마저 지난 20일 은산분리 완화 반대 입장을 금융위에 권고함에 따라 현 정부에서 '은산분리 완화는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주요 민생 법안 가운데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과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생계형 적합 업종은 영세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업종을 정부가 지정해 보호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이지만, 공청회도 거치지 못한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중위) 소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지역상권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은 영세 소상공인의 상권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거나 상권이 쇠락하자는 지역에 대해 임대인과 임차인인 상인 간 상생협의체를 만들어 임차료 인상 등 통제를 받도록 하자는 법이다. 이 역시 산중위 소위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