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세탁기 덤핑으로 미국 산업이 파괴된다고 발언, 논란을 빚고 있다. 한국 세탁기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시행 여부가 곧 결정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우리 통상 당국이 의미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업계는 세이프가드 시행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적용 범위와 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한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한 우리(미국) 산업을 파괴하며 세탁기를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에서 로이터통신과 1시간 가까이 인터뷰하며 세계 무역·통상 현안 입장을 밝히면서 나온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산업통상자원부 등 통상 당국과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세탁기 세이프가드 시행 여부와 수위 결정을 보름 앞두고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발언에 따라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시행하면 우리 기업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업계에 따르면 세이프가드 최종 결정일은 다음 달 2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 입장에서는 세이프가드가 시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얼마나 강력한 수위로 시행될 지가 관건”이라고 예의주시했다.
우리 정부는 인터뷰 발언 의미 파악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할지 예단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인터뷰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블러핑(엄포)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있어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 접촉, 외신 모니터링 등을 통해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정보를 전혀 공유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세이프가드 결정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달 백악관에 제출한 세이프가드 권고안을 토대로 최종 결정한다. 120만대를 초과하는 수입 물량에 대해 저율할당관세(TRC) 50%를 부과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권고안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번 발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세이프가드 시행은 물론 권고안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치나 더욱 강력한 세이프가드를 시행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업계에서도 세이프가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양사는 미국 현지 공장 가동으로 세이프가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세탁기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LG전자도 테네시주 공장 가동 시기를 앞당길 예정이다.
송대현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 사장은 “미국 내 정치 상황, 보호(무역)정책 등으로 이슈화돼 있는 것”이라면서 “다음 달 중에 결정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인식은 우리가 미국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이번 발언이 시사하는 바가 결코 긍정이지 않고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지식재산권(IP) 침해를 지적하며 전방위 무역 보복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매우 광범위한 IP 침해에 대규모 벌금을 물릴 예정”이라면서 “곧 발표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