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의 오픈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개방이 잇따르고 있다. 은행 고유의 수익 모델이 정보기술(IT) 산업계로 넘어가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간편함을 추구하며 비대면 채널을 이용하는 고객이 늘었고, IT를 접목한 금융 서비스는 은행을 통하지 않고도 가능해졌다.
금융사 API 개방은 독자 운영을 고집하면서 막대한 부가 수익을 올리던 킬러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은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API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프로그램 명령어 묶음이다. 은행이 API를 오픈하면 IT 기업은 핀테크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은행은 폐쇄 형태의 개발보다 비용을 낮추고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API 제공 대가로 별도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고유의 수익 모델을 나눠 주는 대신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다.
그동안 금융권은 세부 업종 간 경쟁 구도였다. 외부 혁신 기술을 채택하거나 내부 기술을 외부에 공급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면서 상황은 변했다. 거대 포털 등이 강력한 경쟁사로 부상, 경쟁력 확보에 한계를 느낀 금융사가 핀테크 업체와 협업을 택한 것이다.
'금융 IT'로 표현된 금융과 IT 융·복합 시대는 가고 '금융·IT 협업' 시대가 도래했다. 금융 IT를 강조하던 때는 모든 결정과 권한 주체가 금융권이었다. IT는 전통의 금융 산업을 보좌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금융 산업과 IT 산업은 수평형 협업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은행의 API 개방은 그 방증이다.
이 같은 흐름은 금융 IT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IT가 주체로 떠오르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IT 협업 시대가 열렸다. 4차 산업혁명발 IT 협업 트렌드를 읽어야 우리 산업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산업 정책도 IT 협업 시대의 틀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개발비 후려치기 등 희생을 강요하던 IT 융합 시대는 저물었다. IT 협업이 대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