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응용전력전자학회 '2018 APEC'이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열렸다. 3월 4일부터 8일까지 4200여명이 참가해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270여개 기업의 신기술도 엿볼 수 있었다.
전력전자는 반도체소자로 전력을 제어하는 학문이다. 최근 태양광발전, 전기자동차, 무선충전 등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지난 50년간 인구증가와 도시화, 자원고갈과 기후변화 등으로 전력전자 세계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연간 신재생에너지 520조원, 전기자동차 60조원, 무선충전 10조원의 시장 규조다. 연간 50% 내외로 고속 성장한다. 이보다 성장률은 낮지만 전동기(120조원), 전기철도(120조원), 조명(110조원), 전원장치(80조원), 고압직류송전(HVDC, 60조원) 시장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APEC은 이러한 에너지·전력산업 변화의 중심이다.
올해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 기업 약진이다. 10년 전 한두 곳에 불과했는데 이번에는 20곳 이상이 참여했다. 합작회사를 포함하면 더 많다. 세계 태양광발전·풍력발전·고압직류송전장비 생산·설치량의 절반을 중국이 차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 참여 기업 수는 적은 편이다. 아쉽게도 한국 기업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발표된 논문 수는 중국이 절반 정도 됐는데 10년 전에는 10% 이하였다. 그 사이 논문의 질도 크게 개선됐다.
또 다른 변화는 실리콘카바이드(SiC)와 갈륨나이트라이드(GaN)와 같은 광대역갭(WBG) 전력소자의 본격 상용화다. 10년 전에는 워낙 고가여서 국방·우주·원자력 등 특수목적에만 쓰였다.
광대역갭 소자는 스위칭 속도, 도통손실·열전도 특성이 실리콘 소자보다 최대 10배 정도 좋다.
최고 동작온도(JT)도 실리콘의 150℃ 비해 훨씬 높은 250℃다. 광대역갭 소자 가격이 내려가면서 태양광발전·전기자동차·스마트그리드용 인버터에 적극 채택되는 추세다. 그 결과 인버터 효율이 98%로 높아지고 발열이 줄었다. 크기도 10분의 1로 줄었다.
차세대 광대역갭 소자의 주도권을 놓고 이번에 논쟁이 붙었다. 지금은 GaN 시장이 크지만 SiC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SiC는 고전압소자로, GaN는 고주파소자로 각각 특화돼 경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광대역갭 소자용 드라이버 집적회로(IC), 패키징, 고온동작에 따른 냉각 기술도 개발되고 있었다.
친환경에너지와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력기술개발도 활발했다. 신재생에너지는 전통적으로 풍력발전이 기술 개발, 시장 규모에서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태양광발전 경제성과 사회적 수용성이 좋아지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스마트그리드, 고압직류송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에는 액체흐름전지(LFB)와 슈퍼캡 등이 연구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원의 변동성·간헐성·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최신 스마트그리드 기술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이 거론됐다.
전기차와 관련해서는 리튬이온배터리와 고속·대용량 충전장치가 주목받았다. 전기차용 무선충전은 상용화가 목전이었다.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장이 열린 데 이어 사물인터넷이나 웨어러블 기기, 로봇, 드론 등으로 적용범위가 커졌다. 센서용 에너지 수확(하베스팅) 기술로는 광전지, 전파, 진동에너지가 주로 시도되고 있다.
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 등의 시장 확대로 대형 데이터센터용 직류(48V) 전력장치 시장이 커지고 있다. 효율·신뢰성·가격·크기 경쟁이 치열하다.
전력전자 산업 미래를 예측할 때 전력전자 소자 시장이 단서가 된다. 작년에 세계 시장은 34조원이었다. 전력전자 소자 사용 비율은 중국 40%, 일본 16%, 유럽 18%, 미국 8%다. 중국이 세계 전력전자 장비 생산을 주도하는 것이다. 아직 시장은 열려있다. 우리의 반도체기술로 광대역갭 전력소자와 태양광발전분야 세계시장을 열어 갈 수 있다. 전기자동차, 무선충전, 스마트그리드 등 시스템분야도 유망하다. 10년 내 에너지·전력분야 글로벌 기업을 APEC에서 보게 되길 희망한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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