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5년, 환경이 파괴되고 식량이 부족하며 빈부격차가 극심한 세상이 도래한다. 미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울한 세계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다른 점은 가상현실(VR) 세계 '오아시스'에서 현실을 도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아시스에는 나를 대변하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하며 현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
28일 개봉하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니면 스크린으로 옮기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예고편만 봐도 탄탄한 캐릭터 구현능력과 충실한 컴퓨터 그래픽, 환상적 영상미가 눈부시다. 원작자조차 소설 속에 상상해 그렸던 세상이 충실하게 재현됐다며 감탄할 정도다.
가난한 10대 소년인 주인공은 VR 세계 오아시스에서 위안을 느끼며 살아가던 중 오아시스 설계자인 억만장자가 유언으로 남긴 수수께끼 풀이에 참가하며 위기에 처한다. 억만장자는 수수께끼 3개를 모두 푸는 사람에게 막대한 유산과 오아시스 운영권까지 넘긴다고 했는데, 주인공이 그 중 하나를 풀었기 때문이다. 유산을 노린 사람이 주인공을 위협한다. VR 세계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아바타들간 싸움을 묘사하기 위해 VR, 모션캡처 등 기술이 활용됐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작가 어니스트 클라인이 2012년 발표한 자신의 첫 소설이다. 요리사, 생선 해체 작업자, 혈장 기증자, 비디오 가게 점원 등으로 일하며 대중문화에 미쳐 살던 저자는 급기야 자신의 공상을 현실 세계에 펼쳐 보이기로 마음먹고 처음 쓴 시나리오 '팬보이즈'가 2008년 흥행에 성공하며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의 대중문화 매니아로서의 애정과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80~9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 추억을 느낄 만한 문화 요소가 듬뿍 담겼다고 한다.
이 영화는 가상의 현실을 다루지만 실재 세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레디 플레이어 원 제작에 공동 참여하며 VR 기술을 지원한 HTC 바이브는 영화에 나온 전투 장면 등을 8개 VR 게임으로 만들어 이달내 배포하기로 했다. 영화를 본 사람은 게임을 해보고 싶을 것이고, 그러려면 바이브 VR 헤드셋을 사야 한다. 영화 흥행이 VR 판매로 이어지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세련된 마케팅 기법이 아닐 수 없다. 수년 전 영화 아바타 흥행으로 3D TV 붐이 일었던 게 떠오른다.
우리나라도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두고 VR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5G 기술을 대중에게 알릴 적임자로 VR를 선정하고 새로운 VR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외형에 치중할 뿐 정작 VR 콘텐츠에 충분히 투자하는지 의문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성공한다면 원작 콘텐츠의 힘 덕분이 아닐까.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