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충남 천안에 최첨단 반도체 패키지 생산기지를 만든다. 중소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생산하던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을 활용한다. 기존의 온양 패키지 사업장과 달리 실리콘관통전극(TSV), 웨이퍼레벨패키지(WLP) 등 최첨단 공정 전용 라인으로 조성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지난해 말부터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용해 온 천안 5세대 LCD 생산 라인인 L5를 임대, 최첨단 패키지 공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장비 구매 등에 수천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올 하반기에 1차 구축 작업을 끝내고 시장 수요에 맞춰 확장한다. L5에선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 기반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3단 적층 이미지센서 후공정이 도입된다.
HBM은 D램을 TSV로 적층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대폭 높인 제품이다. 인공지능(AI) 구현을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초고속 중앙처리장치(CPU)와 붙여서 쓰는 용도로 활용된다. 최근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3단 적층 이미지센서는 센서·로직·D램을 하나로 적층한 제품으로, 초고속 촬영이 특징이다. 갤럭시S9에 이 제품이 탑재돼 슈퍼 슬로모션 동영상 촬영을 가능하게 했다.
삼성전자는 추후 웨이퍼레벨패키지(WLP) 기술인 2.5D와 팬아웃(FO) 패키지 공정도 L5에 도입할 예정이다. 2.5D는 기판 위로 복수의 개별 반도체 칩을 평면 배치, 전송 속도를 높이고 면적을 줄이는 기술이다. 팬아웃은 입출력(IO) 단자를 칩 바깥으로 빼내 IO를 늘리는 기술로, 대만 TSMC 등이 먼저 상용화했다. 애플 아이폰에 탑재되는 A시리즈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TSMC 팬아웃 기술로 패키징된다. 삼성전자는 자체 WLP 기술로 팬아웃을 구현하겠다는 궁극의 계획을 세워 뒀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온양 사업장에선 패키지온패키지(PoP) 등 기존 공정을 수행하고 TSV 등 첨단 패키지는 천안 디스플레이 공장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라면서 “온양은 공간이 꽉 차서 이 같은 전환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안 LCD 사업장이 반도체 패키지 생산 라인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천안 크리스털 밸리'라는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천안에는 3.25세대 L3, 4세대 L4, 5세대 L5, L6 LCD 공장 등이 있었다. 라인명은 4개로 나뉘어 있지만 L3와 L4가 1개동 건물, L5와 L6가 또 다른 1개동 건물로 이뤄져 있다. L3와 L4 건물은 삼성전기가 패널레벨패키지(PLP) 생산 공장, L5와 L6 건물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가 각각 WLP 생산 공장으로 활용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의 PLP와 삼성전자의 WLP가 상호 경쟁 또는 보완 형태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천안에도 삼성 반도체 인력이 다수 포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은 웨이퍼를 가공하는 전공정에 매진하고 후공정 분야에는 큰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전공정 혁신보다 후공정 패키지 분야 혁신 가능성이 짙다는 점을 인지하고 투자와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