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가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자동차, 커넥티드카 등으로 전장화 비중이 높아지면서 핵심 전자소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불필요한 전자기파를 억제해서 전자 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전자파간섭(EMI) 차폐' 소재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쇼티지'(공급 부족)가 우려된다. EMI 차폐 소재는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에도 중요한 소재다. 산업 간 소재 확보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EMI 차폐 소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쇼티지에 대비, 5년치 물량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동차 전장화가 이뤄지면서 차폐 소재 수요가 커짐에 따라 수급 불균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생산 계획이 잡혀 있는 차량에 사용할 분량 확보도 우려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EMI 차폐는 특정 부분을 도체 또는 강자성체로 둘러싸 외부 전자기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다. 전자기장 주파수가 높을수록 효과가 있어 고주파 공학에서 많이 사용된다. EMI 차폐 정도는 사용되는 물질, 두께, 공간 크기, 진동수 등에 따라 결정된다.
EMI 차폐 소재는 지금까지 스마트폰, 태플릿PC 등 주로 IT 기기에 사용됐다. 최근 자동차 전장화가 가속되면서 EMI 차폐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는 스마트폰보다 최소 5배에서 최대 12배 많은 전자기기와 부품이 들어간다. IT 기기에 비해 사양이 높은 EMI 차폐가 요구되고, 많은 양이 사용된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전장화가 늘어날수록 EMI 차폐에 쇼티지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는 차체 내부 통신과 차량·사물통신(V2X)과 같은 외부 통신 기술이 다양하게 적용된다. 현재 제네시스 EQ900의 경우 라디오, 디지털다매체방송(DMB), 위성항법장치(GPS) 등 총 30개의 안테나가 들어간다.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는 이보다 2~3배 많은 안테나가 필요하다. 또 초고속 통신을 위한 '이더넷'이 도입되면 고사양 차폐 기술이 필요하다.
자동차 업계에서 차폐 소재 확보에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독일 폭스바겐 그룹이다. 폭스바겐그룹은 EMI 차폐 소재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나노크리스털' 5년치 물량을 미리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등에서 친환경차량·커넥티드카·자율주행차 개발에 사용할 물량이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그룹이 나노크리스털을 대거 확보하면서 삼성전자, 애플 등 스마트폰 업체들이 EMI 차폐 소재로 페라이트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면서 “자동차는 면적이 큰 만큼 알루미늄, 산화철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할 수 있지만 최근 경량화 이슈가 커진 만큼 나노크리스털, 페라이트 등 확보에 적극 대응해야 앞으로 가격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아모그린텍, 삼화전자가 EMI 차폐 소재로 '나노결정립리본코어' '페라이트'를 공동 개발했다. 현재 쏘나타 하이브리드, 아이오닉, 니로, 넥쏘 등 현대·기아차 친환경차 7개 차종에 적용하고 있다. 내년에 생산하는 '초고속 커넥티드카'에도 페라이트가 적용된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0년까치 전기차,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31종에 페라이트를 적용하기로 했다. 현대차도 관련 소재 확보가 시급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초연결 커넥티드카는 고품질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보안 등을 위해 높은 사양의 EMI 차폐가 필요하다”면서 “미래 자동차 기술이 상용화될수록 차폐 소재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국내외 기업들과 소재 개발 및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