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에서 임명됐다가 정권 교체 후 사퇴 압박을 받은 과학기술계 기관장이 모두 옷을 벗었다. 정치 성향과 관계가 적은 과학계까지 '코드 인사' 바람에 휘청거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계의 사기 저하와 또 다른 코드 인사가 우려된다.
9일 과학계에 따르면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이 이날 퇴임식을 끝으로 원장직을 내려놨다. KISTEP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 기관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정책 자료를 발간하고 기술 예측·수준 조사 등을 수행한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실무를 비롯한 과기정통부의 과학 정책 업무 전반을 뒷받침한다.
임 원장은 지난 정권 말인 2017년 4월에 취임했다. 2010~2012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2012~201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퇴 압박을 받았다. 임기는 2년가량 남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임명됐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중도 사임한 과학계 기관장은 임 원장을 포함해 3명(과기정통부 직할 기관 기준)으로 늘었다. 이에 앞서 조무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박태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도 3월 말과 지난해 12월 말 각각 사퇴했다. 이들 기관장의 임기는 각각 1년 6개월, 2년가량 남은 상태였다.
이들은 모두 현 정부로부터 '나가 달라'는 취지의 사퇴 압박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과기정통부 고위급이 직접 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기관장은 당시까지 기관 운영 상 중대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 정부가 과학계 기관장을 '전 정부 코드'로 분류해서 솎아 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사퇴를 거부한 기관은 공교롭게도 모두 과기정통부 감사 대상에 올랐다. 이날 임 원장의 퇴임으로 시나리오는 현실이 됐다.
과학계가 우려하는 것은 '또 다른 코드 인사'다. 창의재단은 새 이사장 선출을 위한 심사가 한창이고, 연구재단도 조만간 새 이사장 공모에 들어갈 예정이다. KISTEP은 당분간 부원장 직무 대행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 캠프에 참여한 인사, 고위 관료 출신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
과학계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 가운데 일부는 정치 배려로 기관장이 됐다는 의심을 샀는데 지금 정부가 전 정부 인사들을 쫓아내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면서 “정치권과 관계된 여러 세력이 과학계를 주인 없는 집처럼 마구 헤집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