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트렌드]'순한 소주'의 '독한 경쟁'

[마켓트렌드]'순한 소주'의 '독한 경쟁'

최근 수년간 잠잠했던 소주 시장이 다시 '저도주 경쟁'이 불붙을 전망이다. 독한 소주 맛보다는 부드럽고 순한 맛을 찾는 소비자 요구에 맞춰 소주업계는 계속해서 도수를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브랜드를 전면 리뉴얼하고 기존 제품보다 0.6도 낮아진 '더 깨끗한 참이슬 후레쉬(17.2)'를 16일 첫 출고한다. 2014년 11월 참이슬 후레쉬 출시로 18도 벽을 무너뜨렸던 하이트진로가 다시 한번 도수 조정에 나선 것이다.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가 주력 제품의 알코올 도수를 롯데주류도 '처음처럼'(17.5도)의 도수를 낮춰 저도주 경쟁에 가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924년 35도로 시작한 소주는 1965년 30도로 낮아졌다. 1970년대 들어 식량문제로 정부가 양곡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 생산을 금지하면서 소주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알코올을 물에 희석한 '희석식 소주'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하면서 1973년 업계 독보적 1위 진로가 처음으로 20도대 소주 진로(25도)를 선보인 것이다.

이후 부산·경남을 지역 기반으로 한 무학이 1995년 '소주는 25도'라는 공식을 깨고 23도 '화이트'를 처음으로 출시했고 하이트진로가 1998년 23도 참이슬을 출시하며 순한 소주 시대를 열었다. 하이트진로는 2001년 당시 두산주류에서 22도 '산'을 출시하자 22도로 낮추며 대응에 나섰고 2004년 21도로 다시 도수를 낮췄다.

[마켓트렌드]'순한 소주'의 '독한 경쟁'

이후 롯데주류가 등장하며 알코올 도수는 다시 낮아졌다. 롯데주류는 2006년 21도 제품이 주를 이뤘던 소주시장에 세계 최초로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한 20도 소주 '처음처럼'을 선보였다. 롯데주류가 시장의 반향을 불러오자 하이트진로는 같은 해 참이슬 도수는 19.8도로 낮추며 20도 벽을 허물었다. 하이트진로가 도수를 낮추자 롯데주류도 2007년 7월 19.5도로 낮추며 맞대응했고 두 달 뒤 하이트진로도 다시 19.5도로 도수를 내리는 치열한 도수 낮추기 경쟁을 벌였다.

순한 소주가 인기를 끌자 무학은 2006년 11월 파격적으로 도수를 낮춘 16.9도 '좋은데이'를 선보였다. 좋은데이는 출시 두 달 만에 169만병을 판매하는 돌풍을 일으켰으며 현재 수도권까지 진출하며 '소주업계 빅3'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좋은데이가 인기를 끌자 하이트진로는 2010년 12월 15.5도 '즐겨찾기'를 출시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에도 하이트진로는 2007년 19.5도, 2012년 19도, 2013년 2월 18.5도를 거쳐 2014년 11월 17.8도 제품을 출시하며 소주 알코올 도수의 마지노선으로 여겨겼던 18도 벽마저 허물었다. 이후 약 3년 만에 0.6도를 낮춰 17대 초반까지 도수를 낮추는 것이다.

[마켓트렌드]'순한 소주'의 '독한 경쟁'

하이트진로는 주류가 저도화 되는 추세를 주목했다. 2년간의 소비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각적인 테스트와 분석을 진행해 최적의 도수를 17.2도로 판단, 이번 도수 인하를 결정했다.

특히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후레쉬 본연의 깨끗하고 깔끔한 맛을 강조하기 위해 제조공법과 도수 변화를 통해 음용감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특허받은 대나무활성숯 정제과정에 사용하는 숯을 국내 청정지역인 거제, 김해에서 자란 대나무만으로만 선별했다.

또 패키지를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선택해 '이슬'의 깨끗한 콘셉트를 표현했다. 기존 직사각형 라벨 대신 이슬을 형상화한 이형 라벨을 업계 최초로 적용해 차별화한 것. 참이슬 브랜드와 이슬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이슬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해 시각화하기도 했다.

여기에 하이트진로는 여전히 참이슬 오리지널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도수를 그대로 유지하며 양분화 된 시장에 차별화 한 전략으로 시장 공략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주류업계가 이처럼 공격적으로 저도수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니즈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벼운 음주문화가 자리 잡고 여성 음주자가 증가하면서 순한 소주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주업체 입장에서는 알코올 도수를 줄이면 매출과 원가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저도수 소주를 마시면 기존 소주보다 덜 취하기 때문에 그만큼 판매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 지난 2006년 20도 소주가 등장한 뒤 소주 출고량은 전년보다 6.7% 증가했다. 소주 도수가 19도로 낮아진 2012년에도 5.1%가 늘어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원가를 줄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소주는 주정을 물에 타 희석하는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알코올 도수 1도를 낮출 때마다 원가가 약 6원가량 절감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류업계 저도화 트렌드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며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한 단계 낮춘 만큼 다른 업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