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정보통신 강국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제는 아니다.
국내 정보통신 산업의 현주소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허약한 구조다. 성과 위주 산업 정책과 오랫동안 답습해 온 하청 구조가 '창의'와 '혁신'을 가로막았다.
지난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걸고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폈지만 창조성에 걸맞은 산업 문화 만들기에 실패했다. 기업가 정신이 있는 청년의 도전, 혁신 비즈니스 모델 창출, 펀딩 메커니즘과 빠른 실험, 성장과 재투자로 이어지는 혁신 성장 선순환 구조는 작동하지 못했다.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다. 세계 ICT 산업은 플랫폼 중심 경쟁 체제로 진입했다. '플랫폼 중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세계 각국은 자신의 강점 중심으로 플랫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개방형 창업 문화와 펀딩 메커니즘에 기반을 둔 소프트파워로 인공지능(AI) 중심 플랫폼을 촉진하고 있다. 독일은 1000개가 넘는 히든챔피언을 보유한 나라답게 전통 제조업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
중국도 구형 기술에 집중 투자하는 추격 전략과 새로운 혁신 플랫폼으로 우회하는 도약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대규모 인구와 사회주의 체제로 훈련된 공유 문화가 ICT 플랫폼과 만나면서 혁신의 폭발력이 가중되고 있다.
우리가 주춤한 지난 10년 사이에 세계는 새로운 변화를 향해 요동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너트 크래킹'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부가 가치를 만들던 ICT는 타 산업의 부가 가치까지도 증가시키는 융합의 가교로 진화했다. 가교 역할도 산업에서 인간 생활과 사회 문제로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어번테크·시빅테크·청정기술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통 산업경제 시장을 벗어나 스마트시티·생활속실험실·디지털사회혁신과도시재생(도시혁신) 등 다양한 공간으로 쓰임새가 늘고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와 문제 중심으로 게임의 룰을 선도하는 국가 시범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에 앞서 삶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으로써 ICT 선도 사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스마트시티를 보게 되고, 사용자(시민)가 참여하는 생활 속 실험실을 구상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삶을 위해 데이터 기반 경제체계(데이터노믹스)로 전환하고, AI·블록체인·클라우드·빅데이터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과 노동 소외 현상을 어떻게 결합해야 할지를 모색하게 된다.
AI나나 로봇과 인간의 협업 모델,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직접민주주의 플랫폼, 데이터 기반 리빙랩 실험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는 세계를 선도할 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최근 정부가 국가 R&D 개발 방향을 융합형 R&D 기획에 집중하고 패키지형 R&D 개발 체계를 확정했다. 기술 공급 중심에서 도메인 분야로 사고를 전환한 매우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메인 문제와 혁신 플랫폼 연결에 좀 더 집중하고, 다수의 전문가와 사용자가 참여해 여러 번의 모형을 실험하는 정책 환경으로 진화되기를 바란다.
부처별로 경쟁하는 리빙랩 연계 프로젝트, 생활기술 연구개발 지원, 커뮤니티경제 지원, 디지털 기반 사회 혁신 프로젝트 역시 단순한 이슈 선점에 머물지 않고 플랫폼 관점에서 묶여지길 기대해 본다.
정보통신 산업이 이러한 입체 혁신 기회 창출을 모색할 때 독자 변화 플랫폼 시장과 위상을 만들고, 정보통신 강국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 중심, 모순지향 사고, 문화 체질 변화를 위한 새로운 진격!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시점이다.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 도시미래기획실장 kimheed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