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가상(암호)화폐를 사실상 가상자산으로 인정했다. 여러 규제안이 있지만 투기 광풍으로 부정 입장에 있던 상당수 국가가 암호화폐를 제도권 내 자산으로 편입할 것이 예상된다. 가상자산에 대한 별도 가이드라인도 국가 차원에서 만든다.
캐나다 등 G20에 참여한 일부 국가가 자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DBC) 상용화를 검토하는 등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각국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태세다. 반면에 한국은 거래소 압수수색과 암호화폐공개(ICO) 전면 금지 등 산업 근간을 흔드는 일방 규제로 블록체인 산업계가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14일 외신과 본지가 입수한 G20 내부 보고서 등에 따르면 G20 재무장관 회의 등에서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표기, 사실상 자산으로 분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외부 여론을 의식, 7월까지 각국이 별도 자산 규정안을 만들기로 했다. 소비자와 투자가 보호, 시장 신뢰성, 탈세, 자금세탁, 테러리스트 자금 조달 관련 문제를 고려한 조치다.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분류한 건 기존 G20 정상회담 등에서 암호화폐 규정이 모호하고, 여론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G20은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재무대책특별위원회(FATA) 기준을 가상 자산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화폐가 아닌 자산 개념으로 리스크를 감시하고 다국 간 대응책을 공유하는 방안이다. 자산으로 규정하면 각국은 암호화폐 규정을 제정하고 표준화할 수 있다.
이는 의미가 두 가지다. 우선 일본 등이 언급한 것과 달리 G20은 암호화폐를 별도 통화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가상자산 표준화 룰' 제정에 합의했다. 제도권 내에서 다루겠다는 의미다. 민간 가상자산으로 사실상 편입, 소비자 보호 대책 수립에 각국 정부가 공조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이 룰 제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해외 선진국 간 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
G20은 공동 성명을 통해 암호화폐 기초 기술을 포함한 기술 혁신이 금융 시스템과 경제 효율성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가능성을 인정했다.
한국 정부도 이 같은 G20 '가상자산' 인정에 대해 여러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중에 암호화폐 관련 국제 규제 초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도 국제 상황에 맞춰 다음 달 중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국제 콘퍼런스도 열기로 했다.
그러나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한국은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우려 단속에 초점을 맞춘 반면에 캐나다 등은 '진흥'과 '법 제정'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이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시장에서 정부 일방 규제로 말미암아 '갈라파고스(세계 시장 고립)'가 될 위기에 처했다.
실제 G20 회의 이후 신흥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암호화폐 진흥 대책을 내놓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CDBC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연구 수준이 아니라 현금 이상 기능을 갖춘 CDBC로 일상생활 활용 방안까지 용역을 발주,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CDBC 발행 목적으로 △중앙은행 수입 확보 △금리 제약 해소, 대담한 금융정책 지원 △금융 안정성 개선 △범죄 활동 억제 등을 내세웠다. PC나 스마트폰, 태블릿, 웨어러블과의 연동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와 교환할 수 있는 '페트로(Petro)'를 발행한다. 지난 2월에는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사전 판매를 실시했다. 베네수엘라는 이를 통해 약 60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주도로 러시아 가상 자산 '루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통화 에스트코인(Estcoin) 발행을 완료했다.
정부 관계자는 “각 정부 암호화폐 진흥 대책은 역설적으로 한국 정부가 별도 추진하고 있는 캐시리스 사회를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가상자산 인정 여부는 정부가 판단해야겠지만 자금 세탁 방지와 테러 자금 조달 규제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한다면 암호화폐에 대한 관점도 바꿔야 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