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내세우는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고 있다. 다양한 시점과 포맷 내에서 연예인의 진정한 모습을 담은 리얼 예능은 대중 감성코드를 어루만지며 지상파·케이블을 넘어 소셜 방송까지 예능 콘텐츠 대세를 만들어내고 있다. 방송가와 대중을 사로잡는 핵심콘텐츠 예능, 이들이 미치는 의미와 영향은 무엇일까?
컬처에센스(Culture Essence)는 국내 예능의 다양한 특징과 함께 이들이 대중에게 갖는 시사점 등에 대해서 알아본다.
◇'토크&대결예능 전성시대' 1990~2000년대 예능
예능이란 영문으로 '버라이어티 쇼(Variety Show)'라고 표현되듯, 음악이나 토크, 코미디 등 다양한 포맷과 내용을 하나의 콘텐츠로 담아내는 복합장르다. 하나의 스토리라인과 포맷으로 콘텐츠를 표현하는 드라마·영화, 다소 짧은 시간 내에 해학적인 요소를 극대화하는 코미디 장르와는 달리 기본적인 콘셉트 외에 다양한 요소들을 적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형태의 오락 콘텐츠로 선보여진다. 실제 인기 예능 트렌드는 시대별로 차이가 있으며, 기저에 있는 다양한 요소도 사뭇 차이가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의 인기예능은 토크쇼와 대결코드가 중심을 차지했다.
주병진쇼·김혜수의 플러스유(SBS) 등 일반토크쇼와 이소라의 프로포즈·윤도현의 러브레터(KBS) 등 음악토크쇼, 장수예능으로 꼽히는 가족오락관(KBS)부터 천생연분·동거동락(MBC), 일요일이 좋다-X맨(SBS), 여걸식스·MC대격돌·해피투게더 시즌1 (KBS) 등 대결 예능은 2000년대 중반까지 시대별 방송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대부분 실내 세트를 기반으로 유머코드나 성대모사 등의 개인기, 체력테스트 등이 퍼레이드로 펼쳐졌다.
물론 이경규의 양심냉장고,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MBC) 등의 사회공익적 예능이나 god의 육아일기(MBC)·다섯남자와아기천사(Mnet)·헬로베이비(KBSjoy) 등의 육아예능, 해피선데이-날아라 슛돌이(KBS)·스쿨오브락(Mnet) 등 예체능 소재 예능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오락적 측면이 강했던 대결예능 인기강세는 여타 예능보다도 두드러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소재와 포맷의 한계성을 갖고 있는 탓에, 몇몇 대표 프로그램들을 제외하고는 오랜 시간동안 이어가지 못했다.
토크쇼나 대결예능의 흔적은 최근 종영된 무한도전(MBC)를 필두로 해피투게더 시즌3(KBS), 런닝맨(SBS), 라디오스타(MBC), 아는형님(JTBC) 등 각 방송사의 여전한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전적으로 토크쇼나 대결예능으로 펼쳐졌던 2000년대 중반까지의 예능코드와는 달리 다양한 방송요소들을 적극 차용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2010년 초중반 예능, 소위 '사랑 넘치는 국민 프로듀서'
2010년대 초중반의 인기예능 코드는 '진화된 러브 버라이어티'와 '오디션'이다. 이 예능코드는 단순히 연예인들의 개인기로 점철되는 단순 대결예능과는 달리 인간적인 요소들이 많이 가미되면서, 리얼 예능을 이끌어낸 중간역할을 담당한 프로그램이 일반적이다.
먼저 러브 버라이어티는 1990년대 사랑의 스튜디오(MBC)를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 목표달성 토요일-애정만세·스타의친구를소개합니다(MBC), 산장미팅-장미의전쟁(KBS), 리얼로망스 연애편지(SBS) 등 종전의 대결예능에 남녀관계를 반영한 새로운 포맷으로 인기를 모았던 장르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 펼쳐졌던 러브버라이어티는 단순한 관계정립보다는 예비스타들의 개인기량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형태로 변질되면서 결국 단순 대결예능과 차별하지 못했고 점차 폐지돼갔다.
러브버라이어티의 행보는 2010년 초중반을 기점으로 한층 진화하면서 주요 인기예능으로 편입된다. 시즌제 편성까지 이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던 '우리 결혼했어요(MBC)'와 순수 일반인 모집으로 진행된 '짝(SBS)' 등 연예인 또는 일반인의 심리변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재미요소들을 부가하면서 기존 대결예능의 한계성으로 꼽히는 단순 '연예인 개인기 구경'이 아니라 인간본능과 행복코드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물론 이 프로그램도 대본이나 편집에 따른 단순 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일련의 사건사고 등으로 한 번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장르적인 장점은 여전히 남아있어, 하트시그널(채널A), 선다방(tvN), 로맨스패키지(SBS) 등 최근 방송가에서 다시 주목을 받을만큼 지속적인 수요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오디션 예능은 말 그대로 연예인이 되기 위한 테스트와 트레이닝, 대결 등 오디션 과정을 예능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슈퍼스타K(Mnet), K팝스타(SBS) 등의 시즌제 대국민 오디션과 열혈남아·믹스앤매치(Mnet) 등 소속사 연습생 대상 오디션, 도전!슈퍼모델코리아(온스타일) 등이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예비스타 자원들의 첫 등장부터 참가자들에 대한 평가와 향후 스타메이킹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과정에 대중의 참여를 반영하면서, 적극적인 참여형 소통예능으로서의 포맷을 정립해 인기를 얻고 있다.
오디션예능으로는 소년24·식스틴·모모랜드를 찾아서·프로듀스 101(시즌1~2)·아이돌학교·프로듀스48 등 엠넷(Mnet)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편집상의 논란이나 프로그램 포맷의 신선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리얼과 관찰 속 다양성 배가' 최근 예능 트렌드
최근의 예능은 '리얼'이라는 코드를 토대로 대결예능과 러브버라이어티, 오디션, 토크쇼 등 인기 예능장르를 총 망라한 형태의 관찰예능이 주류를 이룬다. 앞서 언급됐던 육아예능의 맥을 잇는 아빠어디가(MBC)와 슈퍼맨이돌아왔다(KBS)을 비롯해 △미운우리새끼(SBS)·나혼자산다(MBC) 등 생활예능 △삼시세끼·숲속의 작은집(tvN) 등의 전원예능 △윤식당·현지에서 먹힐까?(tvN)·시골경찰(MBC에브리원) 등 역할리얼까지 엄청난 종류의 관찰예능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글로벌 관찰예능도 부지기수로 나온다. 먼저 국내여행 테마의 대표 버라이어티 '1박2일'의 포맷을 활용한 신서유기·꽃보다할배(tvN) 등이 인기를 얻음에 따라, 해외여행예능이 상당수 등장하고 있다. 실제 그 숫자만 해도 배틀트립·하룻밤만 재워줘(KBS), 선을 넘은 녀석들(MBC), 뭉쳐야 뜬다·비긴어게인(JTBC), 짠내투어(tvN), 원나잇푸트트립(올리브) 등 상당수에 이른다. 또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MBC에브리원)·서울메이트(올리브) 등 국내 거주 외국인 또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선발된 외국인과의 다양한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활예능도 소소한 웃음거리를 전달하며 인기를 모은다.
요컨대 최근 국내예능은 90년대 토크쇼와 대결예능을 기초로 흘러온 다양한 예능포맷들의 특장점에 인간본연의 감정요소를 접목시킨 모습을 띤다. 특히 '관찰예능' 또는 '리얼예능'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성격의 예능들이 출현하면서, 다양한 감각을 지닌 대중의 기호를 맞춰나가고 있다.
◇최근 예능트렌드, 기존예능 염증·대리만족·MCN 영향 커
예능은 다양한 극적 요소들을 바탕으로 대중의 관심분야를 짚어내며 인기를 얻는 콘텐츠로, 시대적 트렌드와 대중심리 분석의 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제 최근 예능트렌드를 살펴보면 대중이 흥미롭게 여기는 요소들과 기본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최근 관찰예능 대세는 대중이 갖는 기존 예능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결구도를 기본으로 하는 예능이나 토크쇼 등 실내 콘텐츠들은 출연자의 재능만 보는 형태로 이미 수십년간 진행되다보니, 많이 식상한 콘텐츠가 됐다. 반면 관찰예능에서는 일상생활 속 연예인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생각은 물론, 실수까지도 모두 보여주면서, 콘텐츠나 재능이 아닌 연예인 개인을 알아간다는 특별한 재미와 심리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연예계에서는 이런 대중의 예능성향에 따라 지상파나 케이블TV 외에도 대중이 자주 찾는 유튜브·네이버TV·V라이브 등 소셜채널을 통해 소속 연예인들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관찰예능의 인기는 대중의 대리만족과 본능충족을 뜻하는 바로도 볼 수 있다. 이는 이에 '힐링', '워라밸', '밤도깨비여행' 등의 키워드가 유행하는 바와 맞닿아있다.
실제 요즘 대중은 핵가족을 넘어 나홀로세대에 가까워 많은 외로움을 겪는데다, 과거보다 더욱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자신에 대한 투자와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며, 육아나 여행,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육아·여행·전원생활 등을 테마로 다루는 최근 관찰예능은 대중이 원하는 편안한 삶을 연예인을 통해 묘사하는 까닭에, 편안하게 보면서 마음을 치유하며 대리만족을 이끌어내는 단초로 작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최근 예능경향에서 볼 수 있는 대중성향은 '모바일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과거부터 리얼예능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다양한 형태의 리얼예능이 등장한 데는 모바일의 영향이 크다. 대중은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보급 이후 지상파·케이블보다 모바일 콘텐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MCN은 쌍방향 소통을 통한 정보전달과 함께 개인이 원하는 삶이나 관심있는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접근해 묘사하면서, 기존 방송을 위협할만한 정도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이에 방송계에서는 위기의식을 갖고 MCN과 대중성향의 관계를 분석, 관찰예능이라는 코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실제 단순 연예인 재주감상에 불과하던 예능포맷들이 점차 일상적이면서도 가볍고 편한 리얼예능으로 확 바뀐 것도 기존 방송형태에 MCN 성격을 크게 가미한 삼시세끼·꽃보다할배·윤식당·신서유기 등 tvN 콘텐츠의 인기가 두드러진 이후다. 또 예능 콘텐츠 자체도 다양한 클립과 소셜영상으로 제작, 모바일에서 접근하기 쉽도록 만들어놓으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인다.
예능은 다양한 요소를 기반으로 대중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 만들어지는 콘텐츠로서 대중 접근도가 높다. 이에 콘텐츠 본연의 매력보다 특정 광고에 대한 쏠림과 단일 장르집중도가 높아지기 쉽다. 예능을 향한 대중의 기호와 유행은 쉽게 변한다. 특히 단순 대결예능의 폐지와 함께 광고나 콘셉트 하나로 종영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무더기로 쏟아지는 관찰예능에 대한 염증이 발생하기 전에 대중과 편하게 어울리면서도 자신만의 내용을 전할 수 있는 예능포맷의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동선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dspark@rpm9.com